[커버스토리]연애에 빠지고픈 남녀를 위한 ‘가을 사랑 방정식’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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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스캔들(또는 로맨스)이 터지면 관중은 바쁘다.

그(녀)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지에 대한 ‘촌평’이 쏟아진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는 그를 사랑했을까. 저마다 근거와 추론을 내놓는다.

누구나 평생 한 번은 겪게 마련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고받는데 실패하는 쉽고도 어려운 감정,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불가사의한 충동, 때로 높은 사회적 지위나 단란한 가족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사람을 몰아가는 열정. 이는 바로 사랑이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랑의 본질을 탐구해보자.》

○ 사랑은 마약

1937년 영국 왕 에드워드 8세는 이혼녀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내놓았다. 이보다 500년 전 조선의 세자 양녕대군은 유부녀 ‘어리’와 사랑에 빠져 세자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로맨스에 빠진 이들에게 사랑은 마약과도 같았을지 모른다.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바라만 봐도 좋았으리라. 사랑은 과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실제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 사랑에 빠졌을 때 인간의 뇌 속에서는 마약이 초래하는 듯한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마치 마약을 먹었을 때처럼 급격히 분비된다. 도파민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펜에틸아민(phenethylamine) 계열 호르몬이다. 사랑 초기에는 펜에틸아민 호르몬이 집중 분비된다. 중독효과가 있어 한 사람을 대상으로 똑같은 수준으로 이 호르몬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인지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 있다. 펜에틸아민 계열 호르몬은 길게는 3년까지 나온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후클리닉 김병후 원장은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때가 펜에틸아민이 나오는 시기다”면서 “이 물질이 분비되면 점잖고 유망한 공무원이 부정한 방법으로 애인의 출세를 도와 주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난다고 사랑이 끝나는 건 아니다. 다른 차원의 사랑이 시작된다.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서로 아끼고 오랜 기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는 따뜻한 감정인 애착이 생긴다. 애착은 모유수유 시 분비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 호르몬과 관련이 깊다. 김 원장은 “옥시토신은 성 관계 때처럼 1분에 40회 이상 피부를 접촉할 때, 껴안을 때, 낭만적인 대화를 나눌 때 분비된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5배 정도 옥시토신 호르몬 수용체가 많아 이 호르몬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성 관계 시 여성이 스킨십을 중요시하는 과학적인 이유다. 위로받고 보호받을 때 나오는 엔돌핀도 넓게 보면 사랑 호르몬이다.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사랑하던 남녀가 펜에틸아민 단계에서 옥시토신 단계로 넘어가는 시기가 다를 때 애정 전선에 문제가 생긴다”며 “이럴 때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건 본능이다. 왜 자신의 짝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무도 시원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한다.

사랑은 본능을 관장하는 변연계(중뇌)가 담당하고 있다. 본능이란 비논리적이다. 중뇌는 사고하고 계산하는 능력, 논리적인 설득력을 맡고 있는 대뇌 피질과 달리 논리보다는 육감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어떤 본능이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걸까. 어떤 이는 배우 ‘장동건’이나 ‘김태희’의 이름만 들어도 환호하지만 어떤 이는 실제 얼굴을 보고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고 싶은 본능이 사랑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자신과 유전자가 많이 다른 사람과 결합하기를 바란다는 설명이다. 자신의 유전자가 다양하게 번성하길 원한다는 것.

미국 뉴멕시코대 생물학자 랜디 손힐 교수는 10명의 남성에게 흰색 상의를 입고 농구하게 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땀 냄새가 밴 옷만을 보여 주며 ‘가장 섹시한 냄새가 나는 옷’을 고르도록 했다. 페로몬 향기로만 상대방을 고르는 셈이었다. 남녀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여성들은 자신과 유전자 구조와 면역체계가 많이 다른 남성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힐 교수는 “다양한 유전자를 받은 아이가 건강하게 살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 같은 선택은 진화론적으로 훌륭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신과 채정호 교수는 “사랑을 하면 여러 가지 호르몬이 나오는 건 맞지만 해당 호르몬을 주입했을 때 없던 사랑이 생기는 건 아니다”며 “사랑은 복잡한 현상이라 물질 현상으로만 규정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달콤한 칭찬 - 성적 매력 - 상상력 자극

유혹의 묘약

○ 상대 마음 잡으려면

적절한 짝을 만났다고 저절로 사랑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애만 태우는 사람이 많을 터.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이 처음 사귀는 단계에서는 데이트 장소를 잘 선택해야 한다. 평범한 곳보다는 약간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좋다. 매력적인 상대를 만날 때, 성적 욕망을 느낄 때 인간은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공포나 불안을 느낄 때도 분비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어도 사람을 유혹한다.

“당신이 내 손을 잡은 두 번째 남자예요. 첫 번째는 우리 아버지예요.”

“우리 집에 가서 치킨 시켜 먹을까?”

이런 말들은 상대방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본보는 13∼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과 함께 20∼50대 남녀 717명에게 위의 말에 대한 느낌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첫 번째 말에 대해선 “거짓말인 것 같지만 어쩐지 설렌다”는 응답이 많았다. 치킨을 먹자는 말에 대해선 많은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첨과 칭찬도 효과적이다. “당신은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에 설레지 않을 여성은 드물다.

남녀 관계에서 솔직함은 중요한 미덕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적절한 환상을 심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인간은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 여성작가 앤젤라 카터는 “우리는 스스로를 우리의 조상인 고등 영장류보다 천사와 연계하려 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이런 방법을 가장 잘 쓴 사람은 클레오파트라라고 한다. 뛰어난 화장술로 카이사르에게는 위대한 이집트 여왕의 이미지를, 안토니우스에게는 아프로디테 여신과 같은 환상을 심어 주었다는 것.

상대방에게 부모나 자식의 역할을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줬던 유년의 경험을 일깨우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되고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정신과 의사로 활동할 때 많은 여성 환자는 프로이트에게 반했다. 그가 치료의 수단으로 환자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현 교수는 “부모와의 관계가 좋았건 나빴건 아버지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이나 말이 유년기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성적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메릴린 먼로, 이효리 등 스크린이나 TV를 점령하는 수많은 ‘섹시 스타’의 인기만 봐도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성적 매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은 외모를, 남성은 성격을 가꾸는 게 좋다고 한다. 미국 루저스대 인류학자 헬렌 피셔 교수는 뇌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통해 사랑에 빠진 여성은 행동을 관찰하는 뇌 부위인 ‘해마’가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남성이 남편,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할 것인지 관찰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남성은 허리 대 엉덩이의 비율이 7 대 10인 ‘잘 빠진 몸매’의 여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 가을엔 사랑을

가을이면 묘한 설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특히 40대 이상 남성은 우울하거나 외롭다는 감정이 생기기 쉽다.

사람은 원래 일조량이 줄어들면 수면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는 대신 기분에 관여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어 우울감을 느낀다. 특히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성취’를 강요받아 온 40대 남성들은 또 한 해가 가고 인생이 지나간다는 느낌에 허탈감과 압박감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대기업 임원 등 성공한 남성들이 겪는 제일 큰 딜레마는 마음을 터놓을 관계가 없다는 것”이라며 “일이나 사업으로 엮이지 않고 그저 한자리에 늘 있으면서 자신을 격려해 줄 이성을 원하기 쉽다”고 말했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다. 남성과 여성은 나이대별로 왕성해지는 호르몬이 다르다. 20, 30대의 남성은 도파민과 남성호르몬이 왕성해 열정적인 사랑을 원하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더 매달리려 한다. 40대 이상의 남성은 여성호르몬이 늘어 가족의 배려, 늘 주고받는 사랑을 원하게 된다. 반면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기에는 여성호르몬이 왕성해 자신과 아이를 돌봐주는 남성을 원하며 나이가 들어서는 다소 성취 지향적으로 바뀐다.

이렇듯 남녀는 서로 다르다. 가족은 과학적으로 이질적인 존재의 만남이기도 하다. 눈먼 열정은 뜨거울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불건전할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랑을 원한다면 가족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족끼리 안아 주고 사랑을 표현하라. 원숙한 관계를 멋있게 만들어 주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흐르고 사랑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글=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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