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조선 무희 落花의 세월을 더듬다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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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경복궁에서 ‘리진’의 작가 신경숙 씨(가운데)가 고종과 명성황후로 분장한 남녀 옆에서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 김훈 씨(오른쪽에서 세 번째)도 팬을 자처하며 자리를 함께했다. 왼쪽 작은 사진은 주인공 리진으로 분장한 모델. 김재명  기자
10일 서울 경복궁에서 ‘리진’의 작가 신경숙 씨(가운데)가 고종과 명성황후로 분장한 남녀 옆에서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 김훈 씨(오른쪽에서 세 번째)도 팬을 자처하며 자리를 함께했다. 왼쪽 작은 사진은 주인공 리진으로 분장한 모델. 김재명 기자
《모두 숨을 죽였다.

흩뿌리는 여우비. 휘젓는 피리 장단에 권효진(23·한국예술종합학교) 씨가 궁중무용 ‘춘앵무’를 펼쳤다.

소설 ‘리진’의 여주인공처럼.

“책을 다시 펼쳐 본 정도가 아니라 글을 새로 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리진’의 작가 신경숙 씨)

10일 오전 서울 경복궁.

한국관광공사와 출판사 문학동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공동 주관한 ‘작가 신경숙과 떠나는 아주 특별한 문학기행’이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60여 명의 사람 속에서 신 씨는 볼이 상기됐다.》

작가 신경숙씨 독자들과 함께 소설‘리진’ 무대 찾아

독자로 참가 김훈씨 “무너져가는 생명 섬세하게 표현”

“독자들을 이렇게 만나는 건 소설을 쓰고 처음입니다.”

들뜨긴 독자들도 마찬가지. 경기 성남시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최명아 씨는 “신문 연재소설을 모아 식당 벽에 걸어 뒀다”고 자랑했다. 함께 휴가를 낸 부부, 손을 꼭 잡은 모녀도 있었다. 20대부터 50대 중년까지, 흐린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가 김훈(59) 씨가 눈에 띄었다. 그는 “독자로 왔을 뿐 민망하다”면서도 “리진은 근대화 과정에서 안타깝게 무너진 아름다운 생명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훈식 리진’을 그려 봐 달란 질문엔 “신 씨처럼 섬세하게 여성을 표현하긴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다.

문학기행 주제가 된 소설은 조선 고종 때의 궁중무희 리진의 애잔한 삶을 다룬 내용. 출간 3주 만에 10만 부를 찍으며 인기몰이 중이다. 일행은 프랑스 공사 콜랭과 사랑에 빠지는 경복궁을 시작으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묘소가 있는 홍릉, 경기 여주군의 명성황후 생가를 돌았다.

소설의 배경 앞에서 작가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주인공이 처음 대면하는 근정전 인근에선 “연애 장면을 쓰는 일은 무척 즐겁다”며 웃음지었다. 교태전에선 “명성황후가 배즙을 떠먹여 준 일은 리진의 영혼에 영원히 각인될 것”이라며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했다. 홍릉에서는 에필로그에서 콜랭의 재혼을 언급한 연유를 설명했다. “실망스러워도 현실은 현실로 존재한다.”

여주 생가에선 명성황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신 씨는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상당히 왜곡됐다”며 “소설을 통해 왕비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갖기 바란다”고 했다. 소설 리진 속 명성황후는 사랑과 친밀감이 넘치는 어머니로 그려진다.

신 씨는 “리진은 다른 소설보다 3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며 “헤어 나오기 어려웠지만 소설의 마침표는 독자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한 독자가 마지막 질문으로 ‘리진과 작가는 얼마나 닮았느냐’고 묻자 “전혀 닮지 않았다. 단지 난 리진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번 행사는 5월 29일 작가 김훈 씨와 함께한 소설 ‘남한산성’ 문학기행에 이은 두 번째. 28일에는 소설 ‘논개’의 작가 김별아 씨와 함께하는 진주 기행이 이어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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