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들려주는 인생수업]‘봄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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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좋은 시절 다 갔지?”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면 으레 이런 얘기들이 오간다. 정말 좋은 시절이 다 갔을까? 어쩐지 선뜻 승복하기가 싫다. 햇빛 밝은 시절을 지나온 것만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좋은 시절이 다 가버렸다고 하기에는 억울하다.

그러고 보면 내게 ‘좋은 시절’이란 게 있었나,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살부터 몇 살까지가 과연 좋은 시절이었나?

문득 옛 생각들이 스친다.

내가 살던 지방도시 외곽에서는 군대의 차량 행렬이 허구한 날 줄지어 어디론가 몰려갔다가 저녁때가 되면 돌아오곤 했다.

그 국방색 트럭들은 붉은 기와 초록 기를 도도히 앞으로 위로 펼치고 근엄하고 오만하게 우리 앞을 통과했다. 나는 그 행렬을 볼 때마다 저들은 어디로 가서 중요한 임무를 치르고 매일처럼 저렇게 돌아오나 사뭇 엄숙했다.

짐칸에 깃대를 든 병사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싣지 않았는데도 무슨 중요한 수송임무 같은 것을 수행하는가 보다고 생각했고 훈련이나 소집, 전투 같은 말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리 산책을 나갔다가 그 차들이 무엇을 하고 돌아오는지 볼 수 있었다. 작은 다리가 나오자 다리를 건너지 않고 쉬엄쉬엄 옆으로 완만하게 차를 몰고 내려가더니, 흘러가는 시냇물에 바퀴와 차체를 시적시적 씻고는 느리게 유턴하여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저 그것뿐이었다.

병사들이 거창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 허망함에 한나절을 웃었다. 그들은 서로 물장구를 치고 발을 담그러 그렇게 허구한 날 도도하고 오만하게 깃대를 펼치며 달려간 것이며, 또 근엄하게 돌아온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어딘가 (인생의) 정점에는, 그 환상의 시절에는, 확 핀 젊은 날에는 대단한 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은 그저 물에 발을 담그던 병사들처럼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봄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따뜻하고 화사하며 아름답다는 봄이 실제로 오긴 왔던가. 2월부터, 3월부터 봄을 기다리지만 을씨년스러운 황사 바람은 쉬지 않고 불었다. 어서 4월이 오면, 어서 청명이 지나면… 했지만 5월이 되어도 황사바람은 그치지 않고 거리는 때로 을씨년스럽다.

그리고 노랑 분홍 꽃들이 잠깐 보이나 했는데 어느 새 6월, 한여름이 되어 버렸다. 봄은 그렇게 언제 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리곤 했다. 봄은, 젊은 시절은, 결혼은, 신혼 시절은 그렇게 아름다웠나. 그 시절에도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일상이 그저 그렇게 나열되어 있지 않았던가.

누구에게나 언제나 견뎌 내야 할 삶이 있는 것처럼 그 시기에도 그저 살아 내야 할 것들이 있을 뿐이다. 단지 지나간 봄은 조금 신선했고 감미로웠으므로, 또한 지나갔기 때문에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을 뿐이리라.

소설가 이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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