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女 “男들보다 잘 산다” 직장-집안일 원더우먼 노릇 끝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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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울의 한 중학교 상담부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41년 동안 교편을 잡았던 김송자(71·여) 씨.

대학 친구 대부분이 전업주부로 있던 시절 매일 아침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김 씨지만 퇴직한 뒤 10년을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때로 기억한다.

그는 2002년 등단해 평생소원이던 시집 두 편을 냈고, 노인종합상담사 자격증을 비롯해 10여 개의 수료증도 땄다.

“일주일 내내 배우고 가르치는 일정이 꽉 차 있어요. 남편에겐 ‘큰딸 하나 더 기른다’고 생각하랬어요. 직장 다닐 때처럼 가사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도 없으니 당당해요.”

여성도 퇴직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산업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 다양한 직업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이 정년퇴직 연령에 접어들면서 여성 퇴직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대 한경혜(소비자아동학과) 교수팀은 최근 한국가족학회에서 발표한 보고서 ‘라이프코스(life course) 관점에서 본 은퇴 경험의 남녀 차이’를 통해 처음으로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던 여성 퇴직자들을 주목했다.

○ 퇴직 후 생활, 여자들이 더 잘한다

한 교수팀은 올해 3월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만 50세 이상 퇴직자 503명(남성 397명, 여성 106명)에게 퇴직 뒤 생활상의 변화를 물었다.

그 결과 여성 퇴직자들이 남성에 비해 퇴직 뒤 생활에서 어려움을 덜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뒤 가족 갈등으로 힘들다고 답한 여성은 17.1%인 데 비해 남성은 32.1%였다.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여성은 27.4%인 데 비해 남성은 42.3%에 이르렀다.

이는 직장생활을 중심으로 일상이 짜인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일상을 가족과 직업 역할로 나누기 때문이라는 것. 가족과 친구관계, 취미 등 ‘소프트 파워’에서 남성보다 강한 것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여성은 퇴직 뒤 부부관계나 친구관계 등 사회적 관계 전반에 대해서도 좋아졌다고 말하는 비율이 두 배 이상 높았다.

한국방송통신대 성미애(가정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지위나 임금 등 노동 환경이 열악해 퇴직 뒤 잃을 것이 별로 없고, 현직에 있을 때 가사와 직장 일을 병행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전투처럼 일한 여성, 만족도 낮아

같은 여성이라도 직종이나 직업 몰입도에 따라 퇴직 뒤 느끼는 생활 변화의 차가 컸다.

1999년 지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32년을 한 은행에서 보낸 이한순(61) 씨는 전문직여성클럽 임원 등을 맡아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지난해는 시의원에도 출마했다. 하지만 ‘허송세월’로 보낸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그는 “할 만큼 일 했으니 쉴 권리가 있는 줄 아는데도 노는 게 얼마나 고문인지 모른다”며 “살림도 서툴러 내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교수팀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반적으로 여성이 퇴직 뒤 부부관계가 좋아질 가능성이 남성에 비해 2.13배 높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문관리직 여성은 퇴직 뒤 부부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퇴직 뒤 부부관계가 좋아질 가능성은 생산서비스직이 가장 높았고, 다음은 사무기술직이었다.

이에 비해 남성은 직종에 상관없이 퇴직 뒤 부부관계가 나빠지는 집단에 속하기 쉬웠다.

또 직업 몰입도가 높았던 여성일수록 퇴직 뒤 부부관계가 악화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성의 경우 직업 몰입도가 낮을수록 부부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이 컸다.

○ 10년 뒤 여성 퇴직 1세대 대거 배출

전문가들은 결혼 퇴직 관행이 사라지고 여성에게도 평생직업의 인식이 생긴 1980년대 후반 취업한 여성들이 10년 뒤 실질적인 ‘여성 퇴직자 1세대’로 대거 사회에 배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여대생 10명에 4명꼴 “성차별 극복 자신없다”▼

요즘 대학생의 취업 준비 유형을 14개로 나눴을 때 기업설명회와 공모전 등 4개 유형을 제외한 10개 유형에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활발히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연세대 문화학과 나임윤경 교수에 따르면 4, 5월 연대 남녀 학생 117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남학생은 기업 연수 프로그램, 취업박람회, 기업설명회, 교내외 공모전 4개 유형에서만 여학생보다 적극성을 보였다.

반면 여학생은 사설학원 수강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커리어 관련 교과목 수강, 교내 취업 프로그램, 취업 관련 동아리 활동, 시민단체 활동, 사회봉사 활동 등 다방면에서 활발히 참여했다.

나임윤경 교수는 이런 내용이 담긴 ‘남녀공학 대학교 여학생들의 변화된 취업준비와 대학의 과제’ 논문을 2일 서울대 멀티미디어 강의동에서 열리는 ‘제18회 춘계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반면 여학생들은 취업 준비 과정은 물론 취업 후 성차별 극복에 대한 자신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여학생 10명 중 4명꼴로 ‘취업 후 승진에서의 성차별’ ‘술자리 문화 등 남성중심적 관행’ ‘업무배치에서의 성차별’ 등을 극복할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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