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뮤지컬 ‘위키드’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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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회오리바람에 집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간 소녀 도로시. 뜻하지 않게 무너진 집에 깔려 동쪽 마녀가 죽게 되고, 동생인 사악한 서쪽 마녀는 언니의 복수를 다짐한다. 도로시는 두뇌 없는 허수아비, 심장 없는 양철나무꾼, 그리고 용기 없는 사자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서쪽 마녀를 먼저 없애라는 말만 듣는다. 서쪽 마녀를 없앤 도로시는 결국 착한 남쪽 마녀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간다.

어릴 때 한 번쯤은 읽었을 ‘오즈의 마법사’다. 그런데 만약 착한 마녀가 알고 보면 심한 ‘공주병’ 환자였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도로시가 없애버린 초록색의 사악한 마녀가 사실은 나쁜 짓을 저지른 오즈의 마법사에 맞서 싸우다가 억울하게 나쁜 마녀로 몰린 정의로운 마녀였다면?

뮤지컬 ‘위키드(Wicked)’는 재미있는 동화 비틀기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이야기 시점으로는 ‘오즈의 마법사’의 전편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은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이 원작. 지난해 9월 말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막을 올린 뒤 5개월째 인기 몰이 중이다. 얼마 전 런던에서 ‘위키드’를 보았는데 아이들보다 성인 관객이 더 많았다.

1400만 달러(약 13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답게 2층 객석 높이로 매달린 거대한 용이 연기를 내뿜는 등 볼거리도 많고, 특히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빗자루를 탄 앨파바가 ‘중력을 이기며’를 부르며 공중으로 높이높이 치솟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묘미는 역시 ‘익숙한 동화 뒤집기’에 있다. 동화 ‘오즈의 마법사’가 바탕이 됐지만 정작 동화 속 주인공 도로시는 공연 내내 딱 한 장면(그것도 실루엣으로)만 나올 뿐, 이 뮤지컬은 사악한 마녀(로 알려진) 앨파바와 착한 마녀(라기보다는 철없는) 글린다가 주인공이다. 또 글린다를 짝사랑한 순정파 남자가 어떻게 심장 없는 양철나무꾼이 되었는지를 비롯해 허수아비와 사자의 사연들이 펼쳐질 때마다 그 기발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치게 된다. 마지막엔 관객의 허를 찌르는 앨파바의 ‘출생의 비밀’도 숨겨져 있다.

고전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곧이곧대로 뮤지컬로 만들었다면 어른들이 하품하게 하는 작품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선악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풍부한 상상력을 보탠 위키드는 아이는 물론 어른이 더 열광하는 대박 문화상품으로 성공했다. 공연사이트 ‘브로드웨이월드 닷컴’(www.broadwayworld.com)에 따르면 ‘위키드’는 2003년 10월 미국에서 초연 후 1년 만에 초기 투자액을 모두 회수했고 지난해 말 브로드웨이 사상 최고의 주간 매출액(171만5155달러) 기록을 경신했다. 런던에서도 역시 웨스트엔드 사상 가장 높은 주간 매출액을 기록 중이다.

‘위키드’는 어른들 눈에 진부한 동화도 알고 보면 대박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공연 기획자들이 늘 이야깃거리(콘텐츠)가 없다고 호소하지만,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핵심이다.

풍부한 전래동화가 있는 우리도 ‘위키드’ 같은 뮤지컬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콩쥐 아빠와 재혼한 못된 팥쥐 엄마에게 알고 보면 처녀 시절 콩쥐 엄마와 얽힌 가슴 아픈 삼각관계 러브 스토리가 없었으리란 법도 없다. 물론 팥쥐에게 얽힌 ‘출생의 비밀’도….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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