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선비답게 산다는 것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선비답게 산다는 것/안대회 지음/302쪽·1만2000원·푸른역사

18세기 김광수라는 선비가 어느 날 한양을 거닐다 고송(古松)이 서 있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산수화에 나올 법한 멋진 소나무. 그 고고한 자태에 넋이 나간 김광수는 이내 주인에게 집을 구입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소나무 한 그루에 매료되어 제값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끝내 그 집을 구입했다.

김광수는 온갖 골동품을 수집하는 벽(癖)이 있었다. 이조판서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벼슬길을 포기하고 오로지 고동서화(古董書畵·골동품과 글씨 그림)를 사들여 감상하고 품평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맘에 드는 골동품을 보면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거나 곳간의 재물을 다 내주고서도 구입해야 직성이 풀렸다.

18세기 전후 조선 선비들의 일상은 이랬다. 최근 미술사나 고전문학 전공자 사이에서 고동서화 수집 열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낯선 풍경일 것이다.

이 책엔 조선 선비들의 흥미로운 일상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고전문학 전공자인 저자가 다양한 사료 속에서 조선 선비 특유의 일상과 사유의 세계를 찾아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가 보여 주는 조선 선비들의 일상은 진지하면서도 여유롭고, 엄격하면서도 낭만적이다.

○ 삶의 내면을 응시하다 ‘한평생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밝은 달을 봐도 부족했었지/이제부턴 만년토록 마주 볼 테니/무덤 가는 이 길도 나쁘진 않군.’

19세기 이양연이란 시인이 쓴 ‘내가 죽어서(自挽)’라는 시다. 고단한 인생, 저승 가는 길을 스스로 위로하는 이 시는 슬퍼서 더욱 아름답다. 조선 선비들의 내면이 달빛처럼 은은하다.

조선시대엔 이양연처럼 유언이나 묘지명을 미리 써 놓는 선비가 많았다. 여기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냉정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그려보는 일. 그건 조선 선비로서의 내면의 성찰이자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 일상을 통해 역사를 기록하다 일기를 쓰는 것도 조선 선비들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18세기 유만주라는 문필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정월 초하루부터 1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서른넷의 나이에 요절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일기는 단순한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당대 사회상을 세세하게 기록한 역사서 수준까지 나아갔다.

‘이 일기는 고금의 일을 포괄하고 고아한 일에서부터 비속한 일까지 두루 갖추어 싣는다. 크게는 성인과 영웅의 사업에서부터 작게는 서민과 미물의 생성까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대로 기록해 둔다.’

유만주의 말 그대로, 그의 일기엔 매일 매일의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통행금지와 금주령이 언제 내려졌으며 한양 사대부의 저택 가운데 가장 비싼 집이 무엇인지 등등 당대의 생활풍속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 고동서화, 그 문화예술에 탐닉하다 입고 있던 옷을 팔아 그림을 사들이고, 원하는 서화를 구하기 위해 중국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도둑이 골동품을 훔쳐갈까 봐 장롱을 끌어안고 잠자는 사람들.

18세기 선비와 중인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동서화 수집 및 감상의 열기가 넘쳐흘렀다. 17, 18세기 문인 이하곤은 벼슬길을 포기한 채 충북 진천에 서재를 짓고 1만 권의 책을 수집해 읽고 또 읽었다. ‘책을 뒤적이다(檢書)’라는 그의 시를 보자.

‘우리 집에는 무엇이 있나/서가에 만 권 서책이 꽂혀 있네/맹물 마시며 경서를 읊조리니/이 맛을 정말 어디에 견줄까.’

게다가 스스로를 책 좀벌레라고 칭할 정도였으니, 그의 책 수집벽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저자는 이 같은 사치스러운 수집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18세기 문화 르네상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열광적인 수집과 감상이 있었기에 미술과 문학 비평이 발달했고 미술과 문학의 창작과 유통이 활발해졌다. 18세기 한양의 선비 사회에 문화적 역동감이 넘쳐흐른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이 책에서 미시적으로 들여다본 조선 선비의 일상 풍경은 시종 흥미롭다. ‘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1억1만3000번을 읽은 희대의 독서광,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면서 절식을 생활화했던 어느 실학자,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고 술을 마시는 것과 같고 미인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면서 산천을 주유하며 시와 그림을 남긴 무수한 시인묵객들….

일상의 모습이기에 조선 선비들이 수백 년 세월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어수선한 이 시대, 그들을 만나는 건 행복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