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그림 읽기]‘제정신’을 찾아서

  • 입력 2007년 1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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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상자’ 그림=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사계절 펴냄
‘파란상자’ 그림=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사계절 펴냄
제정신 아닌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는 제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 그리고 제정신 아닌 것 같은 언행을 애초에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 얘기는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는데, 그런 능력이 너무 없는 사람은 인간관계나 사회관계를 불편하고 불행하게 한다는 걸 우리는 겪어 보아서 알거니와, 어떻든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능력이 너무 없는 사람은 예컨대 국가경영 같은 공공사업에 뛰어들면 안 된다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그림의 파란 종이 상자는 어떤 집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가보인데, 이걸 전해 받은 사람이 각자 이 상자를 어떻게 썼는가를 기록한 낡은 공책과 함께 전수된다. 고조할아버지는 상자 속에 거울을 다섯 개나 붙여 놓았는데 뚜껑을 열 때마다 다섯 개의 자기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는 순간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에서 날아 나와 빛이 들어오는 열린 문을 향해서 날아가는데, 이건 아주 의미심장하다. 이 새는 ‘나’라는 것 속에 갇혀 있던 내가 거울을 통해 객관화되면서 나는 ‘나’라는 감옥에서 해방된다는 전언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도 유아적 자폐 단계에 머물러 있는 듯한 어른이 의외로 많은 듯한데, 그런 사람이 가령 군고구마 장사를 하다가 손님이 없어서 망하는 거야 그 한 사람의 일이니 별문제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인(公人)이나 공적 집단이 제정신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폐적이라면 그건 나라의 운명과 관련되므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괴테가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쇠망과 파멸의 상태에 있는 모든 시대는 주관적이다. 반면에 모든 발전하는 시대는 객관적인 경향을 지닌다”고 한 말을 더불어 상기하고 싶다.

정현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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