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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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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그것도 탁월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정민(46)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 비결을 “정보를 필요에 따라 수집하고 배열해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시킬 줄 알았던 지식경영의 힘”에서 찾았다.
최근 정 교수가 펴낸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다산이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미쳐야 미친다’로 잘 알려진 정 교수는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친 뒤 고전에서 현대에 필요한 지혜를 퍼 올린 이 책을 들고 돌아왔다.
“18세기 지성사를 연구하다 보니 그 시기를 실학이 아니라 정보화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대 ‘사고전서’ 간행 이후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온 18세기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경전에 대한 사소한 해석 차이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시대는 힘을 잃고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재편집해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 것이냐가 중요해진 거죠.”
수집벽과 정리벽이 대단했던 18세기 지식인들을 좇다 정 교수가 마주친 사람은 ‘지식경영, 지식편집의 귀재’인 다산이었다. 정 교수가 연보를 통해 저술 연대를 추정해 본 결과 다산은 언제나 동시에 7, 8가지의 작업을 병행해 추진했으며 한 작업이 다음 작업의 원인이자 결과로 엮여 있었다.
정 교수는 이 책에서 다산의 정보 처리 방식을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묶어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등 50개의 방법으로 정리했다.
“다산의 작업 진행과 일처리 방식은 아주 명쾌합니다. 먼저 필요에 기초해 목표를 세우고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해 카드 작업을 합니다. 이를 분류한 다음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하는 것이죠.”
스스로 정교한 체계를 세워 지식을 조직화했을 뿐 아니라 다산은 자식과 제자들에게도 하나의 정보가 나오면 계속 찾아서 체계를 잡고 질서화하는 것이 공부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다산은 아들이 닭을 기른다고 하면 빛깔에 따라 구분해 보기도 하고 횃대를 달리해 보기도 하고 닭에 관한 글들을 모아 ‘계경(鷄經)’을 쓰라면서 그것이 ‘글 읽는 사람의 양계’라고 가르쳤습니다.”
정 교수는 다산이 ‘목민심서’를 집필할 때와 똑같은 방식을 따라 이 책을 썼다. “이전엔 대개 몇 년에 걸쳐 쓴 글을 모아 책을 냈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설계 도면을 만들어 작업하면서 다산식의 작업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체험했다”고 한다.
“다산의 위대성은 그의 작업량이 아니라 작업의 방식에 있습니다. 그의 지식경영은 효율적인 공부 방법과 경영 지침서로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과거가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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