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퍼들이 쏟아내는 한글예찬

  • 입력 2006년 10월 8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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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번 오는 한글 날/오늘 여기서 풀어 내 맘에 담는 말/랩을 통해 말을 담글질 하는 자/우리말을 통해 우리 맘을 찾는 자~"

한글날 기념 랩 한 소절 부탁하자 즉석에서 A4용지에 라임(비슷한 어투의 말을 반복해 리듬감을 형성)을 만든 3명의 래퍼,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32), '부가킹즈'의 바비킴(33), '가리온'의 메타(35). 한글날을 맞아 국내 힙합 계를 대표하는 이들을 만나 한글예찬을 들어봤다.

●래퍼(Rapper)의 '한글학'

▽메타=1990년 현진영, 서태지, 듀스 등이 있었는데 한글 랩이 흡족하지 못했다. 영어 랩은 '쿨', 한국 랩은 '구리다'는 고정관념도 있었다. 한글의 특성을 생각안하고 영어 랩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한글로 구현하려했던 것이 문제였다.

▽타이거JK=간주를 때우기 위해 그냥 한글을 나열하는 식이어서 한글 랩은 일정한 패턴도 없었다. 한글만의 묘미가 살아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도치를 한다든지, 시적인 형식을 빌어서 과감하게 생략을 하는 등 실험을 계속했다.

▽바비킴=한글은 분절음이다. 이 때문에 영어처럼 굴려 발음을 뭉개면 의미 전달이 안 된다. 그 때 깨달은 것이 그냥 한글의 특성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 뱉을 때 맛이 살아난다. '가''질''수' '없는' '나' 식으로 끊어서 포인트를 넣는 것이다.

에미넘 주연의 영화 '8miles'를 봐도 래퍼들은 수시로 생각나는 언어를 수첩에 적고, 운율을 만들고 기발한 언어 구성, 새로운 언어 조합을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이들은 "한글학자나 언어학자들 처럼 정교한 이론은 없지만 한글 랩을 만드는 과정에서 몸소 체험한 한글의 배치, 한글 구성 노하우, 적절한 표현 등 다양한 경험 이론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타이거JK=초기 그냥 한글을 나열하던 것에서, ~했어 ~갔어 등과 같이 모음으로 각운을 맞추는 2단계로 진화했다. 그 다음에는 3단계로 모음이 아니라 ~거 ~서 ~다 ~고 등 1음절 자음각운을 활용했다. 이후 2음절, 3음절, 다(多)음절 각운을 사용하자 한글의 묘미가 확 살아났다. '~깼다 ~됐다' 식의 2음절에서, '~왔다가 그다음에 갔다가' 등 다음절, 요즘에는 문장을 잘라서 각운을 맞춘다.

▽바비킴='Blue sky'보다 '푸른, 파란, 파랑 하늘'같이… 영어 랩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훨씬 느낌이 좋다. 예를 들어 "My porket is empty"를 "내 주머니가 텅텅 비었어" 하는 것보다 '가진 게 없는 나'로 바꾸니 가사에 한(恨)이 담겨지더라.

●한글 파괴보다는 한글의 진화로…

래퍼들의 한글 사랑은 가볍지 않다. 당구에 미치다보면 잠자리에 들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듯 이들은 "잠자리에서 천장을 보면 단어가 날아 다닌다"고 말했다.

▽메타=옛 한글도 연구했다. 그룹 이름인 '가리온'(갈기만 검은 말)도 순수한 한국어다. 한글의 자부심을 살리기위해 '평양어 사전'도 봤다. 내 고향이 대구라 방언까지 끄집어내고자 했다.(웃음)

▽타이거JK=난 가요 대백과 속 모든 가사, 시집, 노자 장자에 불경도 읽었다. 특히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한글 의성어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들의 한글 사랑 못지않게 랩에서 나오는 파격적인 표현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지나친 생략, 도치, 욕설 등을 한글 파괴 현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메타=지나친 고정관념으로 스스로 한글의 창의성을 봉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창조에는 파괴가 따른다. 하지만 한글 자체에 대해 '그래야만 한글이고 그래야만 한글로서의 랩'이라고 고정하는 것은 스스로 날개를 자르는 일이다.

▽타이거JK=언어가 현실을 비추면 된다. 랩에 '요강', '라샬락 붕(의성어)'이 있다고 방송심의에 걸린 적이 있는데 한글파괴보다 '확장'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자메이칸 등 많은 인종들이 영어 속에서 자신의 언어 정체성을 구현해낸다.

▽메타=뭐 그래도(웃음) 한글 랩은 진화 중이다. 한번은 외국가서 공연하는데 중국인들이 '한국 랩을 어떻게 배울 수 있냐'고 물어왔다. 한글 래핑이 너무 멋있다고….

▽타이커JK='맘에 소리를 내주는 한글/을 통해 통곡해 내뱉어 내 한을/저 푸른 하늘 위로 던져봐 나의 맘을/기다려 가을지나 돌아올 여름에 저녁노을.' 멋지지 않은가?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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