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 비디오냐, TV 드라마냐?

  • 입력 2006년 8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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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액션 드라마 ‘다세포소녀’의 한 장면.
수퍼액션 드라마 ‘다세포소녀’의 한 장면.
최근 드라마 제작에 직접 나선 케이블 방송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를 단순 재방영하던 과거와 달리 케이블TV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드라마를 계속 선보이고 있기 때문. 케이블TV형 드라마들은 지상파와의 차별화를 위해 적나라한 성적 표현과 자극적인 장면을 앞세워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선정성과 폭력성이 강한 ‘B급’을 넘어 ‘C급’ 드라마를 향하고 있는 셈.

‘수퍼액션’은 고등학생들의 변태적 성생활을 주제로 한 드라마 ‘다세포소녀’를 30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방영한다. 제작사인 ‘다세포클럽’ 장원석 대표는 23일 대한극장에서 기자시사회를 열고 “시청자 연령과 기호를 세밀히 분류한 케이블 방송의 장점을 살려 지상파 드라마의 표현 한계를 넘고자 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다세포소녀’는 인터넷 만화가 원작. 제목과 시나리오가 동일한 영화도 현재 상영 중이다. 온갖 성적 판타지로 가득한 무쓸모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원조교제 자위 동성애 등 다양한 형태의 성생활을 즐긴다는 얘기다. 이날 공개한 에피소드는 술자리에서나 나옴 직한 질퍽한 농담 수준이었다.

‘여자화장실’편은 설사가 심한 여고생의 요란한 배변소리 때문에 교내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담았다. 대변에 비유한 장미꽃 잎이 변기에 넘쳐 흐르고 이를 본 교사가 냄새를 맡으며 성적 흥분을 느낀다. ‘과외선생’편은 여고생이 과외교사에게 최음제를 먹이고 채찍과 수갑을 내밀며 “때려달라”는 장면이 나온다.

케이블 방송이 제작한 다른 드라마들도 성적 표현과 유치함이 두드러진다. 10월 중순 방영 예정인 OCN의 ‘가족연애사2’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청춘남녀의 솔직한 성생활을 담은 작품. 한국 남성의 아이를 갖기 위해 성관계를 맺는 일본여성이 등장하는 등 ‘시즌 1’보다 내용과 표현의 수위를 높였다. MBC드라마넷의 ‘빌리진 날 봐요’는 여고생 팬이 가수를 스토킹하며 물건을 훔치다 ‘립싱크를 한다’는 비밀을 세상에 알려 망하게 한다는 줄거리.

방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케이블TV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행 방송위원회 심의절차에는 사전심의제가 없어 일단 전파를 탄 뒤에만 제재가 가능하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윤리적 수준’(제4절), ‘소재 및 표현기법’(제5절), ‘어린이·청소년 보호’(제6절) 등 표현 제약의 수단이 있다. 하지만 ‘방송매체와 방송채널별 창의성, 자율성, 독립성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고무줄 잣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케이블TV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 최정규 부장은 “케이블 방송사들의 채널 전문성 강화를 위해 자체 제작을 독려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케이블 방송의 특성으로 인정해야 할지, 저질 드라마로 규제해야 할지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밝혔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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