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4년 美FBI 은행강도 딜린저 사살

  • 입력 2006년 7월 2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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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미국 시카고. 존 딜린저는 친구와 함께 어설프게 식품점을 털다 체포됐다. 친구는 변호사를 대고 무죄를 호소해 가벼운 형을, 스물한 살의 가난뱅이 청년 딜린저는 변호사도 없이 죄를 고백했다가 10년이 넘는 ‘가혹한’ 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기간 중 딜린저는 은행 강도 해리 피어폰트의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 강도를 꿈꿨다. 1933년 5월 석방되자 ‘선생님’을 탈옥시킬 계획을 세우고 인디애나와 오하이오 주의 은행 네 곳에서 4만 달러를 털었다. 옷을 쪽 빼입은 총잡이가 은행의 보호철책을 단숨에 뛰어넘었다는 소식은 곧 ‘전설’이 됐다. 딜린저는 탈옥 계획을 실행하기 나흘 전인 9월 22일 잡혔으나 피어폰트는 탈옥에 성공했다. 이번엔 거꾸로 딜린저를 탈옥시켰다.

피어폰트와 합친 딜린저는 거칠 게 없었다. 이듬해 6월까지 7건의 은행 강도를 더 저질렀다. 그 사이 다시 체포됐으나 또 탈옥했다. 나무를 깎아 구두약을 칠한 가짜 총으로 교도관들을 위협했으며 보안관의 차를 타고 유유히 교도소를 빠져나왔다. 또다시 전설이 됐다.

1년여 동안 딜린저 일당은 11곳의 은행에서 30만 달러 이상을 털었고 보안관 1명, 경찰관 7명, 연방수사국(FBI) 요원 3명을 살해했다. 번번이 인질을 앞세워 경찰의 포위망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탈출에 성공하면 인질은 곧 풀어 줬다.

그들의 범죄는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대공황을 어렵사리 넘기던 사람들은 어느 새 딜린저를 두고 로빈 후드를 생각하게 됐다.

1934년 6월 30일, FBI 국장 에드거 후버는 딜린저를 ‘공공의 적(public enemy) 1호’로 지목하고 그의 목에 1만 달러를 걸었다. 불법이민자이자 포주인 애나 세이지가 나섰다. 딜린저 일당 중 한 명의 친구인 이 여인은 추방을 막아 달라고 했다. 협상이 이뤄졌다.

7월 22일 시카고 바이오그래프극장으로 딜린저를 유인했다. 오후 10시 40분. 여인과 함께 갱 영화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본 뒤 극장을 나서는 그를 20명의 FBI 요원과 경찰이 에워쌌다. 딜린저는 골목을 향해 뛰었다. 총성이 이어지고 네 발의 탄환이 그의 몸에 박혔다. 공공의 적이 제거된 것이다.

한낱 도둑에 지나지 않은 조 아무개를 홍길동에, 은행 강도를 로빈 후드에 비유하는 대중의 심리와 ‘학교’로 둔갑하는 교도소…. 어찌 그리 닮았는지.

법이 공정하게 집행됐다면 딜린저의 이름이 기록에 남았을까. 한 법조 브로커의 청탁 성공률이 90%에 이른다니 억울함에 사무친 공공의 적이 움트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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