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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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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스물두 살의 나이에 단돈 1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식모이민’을 떠났던 서진규 박사. 딸아이를 홀로 키우며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 육군에 자원해 장교가 되었고, 마흔둘의 나이에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해 마침내 58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삶의 고통이 주는 올가미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비틀거릴 때마다 “일어서야 한다. 쓰러지면 안 된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다. 곁에서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조차 없었기에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자신을 닦아세웠다. 문정희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마음속에 새기며 생의 뜨거운 희망과 열정을 되살렸다.
“어서 네 가슴속 깊이 숨 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를 깨워라!”
스물셋의 나이에 은사와 사랑에 빠져 ‘온 세상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스타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조안 리. 그는 사업에 성공했을 때 순간적인 기쁨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과 더 큰 욕망에 당황해야 했고,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에 몸부림쳤다. 상실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아예 고독과 외로움을 친구로 받아들이자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뒤에 슬며시 찾아온 마음의 평화에 짐짓 놀랐고, 감사했다. 인생은 많은 사건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사건들에 반응하는 우리의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행복하다!”(앤디 앤드루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문화계 인사 28명이 가슴속에 평생 간직해 온 시와 글귀들을 담았다.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나에게로 와 꽃이 된’ 글들을 모았다. 그 감동과 울림은 가슴으로 읽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그대로 가 닿는다.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한 생명의 아픔 덜어 줄 수 있다면,/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연극인 박정자는 ‘19 그리고 80’을 공연하면서 극중 인물인 80세의 할머니 모드에게서 자신이 진정 닮고 싶고, 갖고 싶었던 인생의 참모습을 만났다.
빈집에 들어가 살며 시청 앞 나무가 불쌍하다고 공원에 옮겨 심는 모드는 자기 것은 하나도 없지만, 결국 모든 걸 다 소유한 ‘텅 빈 채워짐’의 삶을 사는 이름 없는 성자다. 모든 일상을 경이로움으로 대하며 그 흔한 돌멩이, 나무 한 그루,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지닌 선명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해.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인간이 되는 걸 두렵게 느끼지 않는 거야….”
앞만 보고 달려오던 어느 날 당연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운명이 그것을 가차 없이 빼앗아 갈 때 우리는 허방을 디딘 듯 깊은 절망에 빠진다. 더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어쩌면 인생은 고통을 풀어 둥지를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양반가의 규수로 컸던 황진이가 자신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그 충격과 절망으로 허우적일 때 한 스님이 이렇게 일러 준다.
“지금은 독이 묻은 화살을 빼내는 시간입니다…. 모든 고통은 한계가 있어 그 너머에 진실이 있으니, 느낄 수 없을 때까지 느끼십시오. 그것이 고통과 진정으로 관계하는 법입니다….”(전경린 ‘황진이’)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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