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틈새서 흘러나온 가혹한 인생…‘틈새’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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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이혜경 지음/256쪽·9500원·창비

이혜경(46) 씨는 ‘마음의 무늬를 말로 다듬어 전할 줄 아는 드문 작가’(평론가 우찬제)다. 물 흐르듯 읽히지만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공들여 만들어졌고, 차분하고 오랜 감동을 주는 ‘웰메이드 소설’이다. 새 소설집에는 그녀의 소설 미학이 무르익은 작품 9편이 담겼다.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표제작 ‘틈새’. 어느 날 기사의 아내가 생활고 때문에 단란주점을 차리겠다고 선언하더니 급기야 이혼을 하겠다고 나선다.

자그마한 틈새들이 있지만 그럭저럭 꾸려갈 만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틈새는 말할 수 없이 깊었던 것.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중년 남성에게도 어김없이 닥치는 인생의 가혹함을 작가는 담담하게 전달한다.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彼我間)’은 결혼 7년 만에 아이를 가진 경은이 부친상을 당하고는 장례식장에서 맞닥뜨리는 인생의 차가움을 묘사한 작품이다.

밤샘하는 사람들이 화투 칠 돈 10만 원만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데, 상주인 큰오빠가 돈 없다며 고개를 젓는 모습, 못 사는 이모가 찾아오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엄마를 때렸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사람살이는 이토록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하다.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오히려 쓸쓸함을 돋운다.

삶에 대한 시선만큼이나 소설 속 언어 쓰임새도 섬세하고 단정하다. ‘감때사납다’ ‘뻐세다’ ‘시드럭부드럭’ 같은 귀한 우리말을 만나는 기쁨도 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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