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0년 배우 그레타 가르보 사망

  • 입력 2006년 4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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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어요(I want to be alone).”

여신(女神)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그녀는 고독과 은둔의 여배우이기도 하다. 영화 ‘그랜드호텔’(1932년)에서 했던 이 유명한 대사는 자신의 실제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스웨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르보는 10대 초반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발소 면도 보조, 백화점 점원 등에 이어 모자 모델을 하면서 드디어 연예계로 나온다.

1920년대 미국으로 진출해 27편의 영화를 찍는 대스타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가르보, 대전 후는 메릴린 먼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신비감을 자아내는 미모로 할리우드를 사로잡았다. 북유럽 신화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그의 얼굴에 대해 롤랑 바르트는 “인간 얼굴의 한 원형”이라고 했다.

배우지 못했지만 연기력은 천부적이었다. “수줍어하던 어린 처녀가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는 순간 탁월한 본능과 카리스마로 지성을 뛰어넘는 천재성을 발휘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은막을 휘어잡던 그녀는 인기가 정점에 이른 1941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36세. 한창 여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나이였다.

“할리우드는 나의 인생을 낭비한 현장이다. 돈과 명성과 욕심이 소용돌이치는 인생 막장이었다.”

이후 거의 50년을 독신으로 미국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수도하듯 보냈다. 꽃과 채소를 길렀고 가끔 편한 옷차림으로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채 시내를 산책했을 뿐 파티나 공식적인 자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55년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그랬다.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무대 뒤에서 혼자 책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촬영이 없을 때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집에서 혼자 지냈고 언론과의 접촉도 내켜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 아니라 오직 배역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을 피한다.”

‘여신’은 1990년 4월 15일 하늘로 돌아갔다. 은퇴할 때 “늙어가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런 고민을 안 해도 될 곳으로 간 것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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