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들만의 학교,그들만의 이야기…‘사립학교 아이들’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6분


코멘트
◇ 사립학교 아이들/커티스 시튼펠드 지음·이진 옮김/588쪽·9900원·김영사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의 중학교에 다닐 때 리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여자애였다. 그렇지만 사립학교에 진학하는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열심히 했지만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별로 구별되지 않았다. 정말 힘든 일은 가난한 장학생이 상류층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열등감에 젖어 가는 것이다.

이 소설은 상류층 아이들로 북적이는 미 동부 사립 기숙학교 얼트에 진학한 중서부 인디애나 주 출신 리 피오라의 학교생활 얘기다. 유쾌하고 발랄한 학창시절의 영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선입관은 첫 장부터 무너진다. 고대역사 시간에 리는 자신이 발표하려고 했던 주제를 다른 친구가 하는 것을 듣고 가슴이 무너진다. 똑같은 주제였던 것.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할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선생님의 엄한 지시에 칠판 앞으로 나간다. ‘되도록 조용히 지내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다가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내 자신을 바꿔 볼 생각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들통 나 버리고 말았다.’

울스웨터를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 학생들, 라크로스(하키 비슷한 구기 종목) 스틱을 들고 웃고 있는 잘생긴 남학생들, 고딕식 벽돌건물과 예배당, 짙푸른 원형 잔디…얼트를 소개하는 카탈로그에 나온 사진들을 보며 리는 꿈을 키웠고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매트리스 가겟집 딸인 리가 겪은 사립학교는 꿈과는 너무나 다르다. 기숙사 이불과 소품만으로도 서로의 수준을 파악하고, 진짜 속내는 말하지 않으면서 시시한 가십거리만 갖고 수다를 떤다. 밤샘 시험공부를 하다가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화려한 파티장으로 모여든다. 사방이 돈이지만 돈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법칙이 있다. 이런 얼트에서 리는 완벽한 아웃사이더다.

저자는 흥분하지 않으면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들추어낸다. 계급과 인종 문제, 10대의 성문화 등 온갖 사회적인 이슈가 미국의 사립학교 안에 담겨 있다.

섬세한 심리 묘사도 장점이다. 리가 흠모하던 크로스 슈가맨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설레는 감정, 크로스와 동침을 한 뒤 부푸는 기분, 크로스가 그저 자신을 좋아하는 여학생 중 하나로 리를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분개하는 장면, 그러면서도 크로스가 자신을 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 첫사랑을 앓는 10대의 마음이 헤아려져 애틋해진다. 리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소극적이었고 열등감에 시달리던 10대의 자신을 용서한다. 리의 룸메이트로 영어가 짧은 한국 학생 신준이 나오는데 최근의 한국인 유학 바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사립학교 아이들’은 2005년 출간됐을 때 21세기 새로운 세대와의 놀라운 공감대는 데이비드 샐린저(‘호밀 밭의 파수꾼’의 저자)를 능가한다(타임)는 등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끌어내면서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가장 좋은 책 10권’에 뽑혔다. 원제 ‘Prep’는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보스턴 지역에 밀집한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뜻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