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흐르는 강물에서 건져 올린 인생’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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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강물에서 건져 올린 인생/윌리엄 플러머 지음·신혜경 옮김/200쪽·9800원·열림원

그날은 아들 니키와 함께 어머니 집을 찾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선약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을 달랬다. 친구는 한밤중에 지나가는 배와도 같으니 언제나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니키는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가족에 대해 아빠와 다른 느낌을 갖고 있어.” “그래, 어떻게 느끼는데?”

니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친구들이 가족 같아!”

나는 한참 동안을 멍하니 있었다. 왠지 옆에 있는 아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녀석이 안쓰러웠다….

어느 날 불현듯 아버지를 닮아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저자. 그는 어느덧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서, 아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아버지로 변해 있었다.

결혼 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사춘기를 맞은 아들에게는 적대감의 대상이었으며, 작가로서는 단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린 시절 온몸으로 거부했던 바로 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낯선 사람인 아버지는 이제 거울처럼 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참으로 고단하고 황량했던 시기에 아버지가 남긴 두 권의 ‘낚시일기’를 통해 아버지의 내면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았던 플라이낚시에 빠져 들면서 인생을 긍정하고 서서히 가족의 의미에 눈떠 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아버지는 은둔자였다. 당신만의 평화를 지키고자 했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구하지도 않았고 실패와 성공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강물도 알고 보면 그 속에서 수많은 물줄기가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듯이 당신도 그렇게 당신의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왜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 당신의 침묵을 깨뜨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인생이란 오직 앞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기 마련이지만, 우리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주는 것은 언제나 지나온 날들이라고 했던가. 아버지의 ‘낚시일기’는 훌륭한 낚시교범이자 생의 지침서였다. 모름지기 낚싯줄이란 빠른 물살 위에 떠있어야 한다! 너무 빨리 낚시터를 떠나지 마라. 황혼이 질 때까지 기다려라! 자연은 늘 수줍음이 많다. 여간해서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 이후로 아버지는 결코 인생의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온몸으로 아버지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토록 힘든 시기에 아버지는 그에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방식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안다. 진정한 낚시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송어가 머무는 깊은 강에는 분명히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곳만의 독특한 모양새가 있었으며,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하나의 멋진 이야기처럼 시작과 마지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원제 ‘Wishing Father Well’(2000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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