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하버드가 지배한다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미국 하버드대의 로스쿨 전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하버드대의 로스쿨 전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하버드가 지배한다/리처드 브래들리 지음·문은실 옮김/415쪽·1만9500원·생각의 나무

2004년 미국 대선에서 하버드대의 많은 교수가 민주당 존 케리 후보의 당선을 간절히 원했다. 그들이 다 진보적 지식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케리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혹시 하버드대 총장인 로런스 서머스(사진)를 워싱턴으로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 책은 그 서머스 총장의 하버드대 개혁과 이에 대항하는 교수들 간의 정치게임에 대한 생생한 현장 보고서다.

하버드대는 교황청에 비견될 만한 권력을 지녔다. 하버드대의 자산은 190억 달러(18조 원)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이 많은 비영리단체다. 대학 중 자산규모 2위인 예일대는 그 절반(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또 하버드대의 역사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보다 120여 년을 앞선다. 세계 최강대국의 세속 권력도 범접 못할 권위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370년의 역사 중에 불과 27명만 배출할 만큼 엄선된 하버드대 총장들의 리더십이 대학 역사에서 큰 몫을 했다는 점도 교황들의 리더십에 의존해 영향력을 키워 온 교황청과 비슷한 점이다.

9·11테러 한 달 뒤인 2001년 10월 4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임한 서머스 총장은 그런 역대 총장 중에서 가장 야심만만하고 막강한 권력을 지닌 총장이다.

52세인 서머스 총장은 하버드대의 최연소 종신교수 중 한 명이었지만 교수 자리를 박차고 워싱턴으로 가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부 차관과 장관을 지내며 초고속 출세 코스를 밟은 인사다. 그의 삼촌은 경제학계의 거목 폴 새뮤얼슨(서머스는 아버지 때부터 바꾼 성이다)이고 외삼촌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다.

얼핏 하버드의 적통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학부 때 하버드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우회해 대학원 때 비로소 하버드에 입성했다. 삼촌인 새뮤얼슨 역시 하버드대 출신임에도 하버드 교수가 못됐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하버드가 그런 그를 총장으로 택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해 가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대학가에도 불어 닥치고 있는 효율의 극대화라는 시대적 화두 때문이다.

서머스 총장은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면서 하버드대 구성원들에게 다원성이니 차별 철폐니 하는 사회문제에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은 채 학문에만 정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하버드대 강 너머의 올스턴에 대규모의 새 캠퍼스를 설립하는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현재 6400명 수준인 학부생을 1만 명까지 늘려 하버드 제국을 더욱 확장하려 한다.

서머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버드는 그렇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세계 최고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우리도 도태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