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기태]책 덮게 만드는 출판계 ‘사재기 논란’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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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출판계에서 벌어진 ‘베스트셀러 사재기’ 논란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흘러 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해 12월 29일 회원 출판사들에 공문을 보냈다. 10, 11월 서점 모니터링과 자료 분석을 통해 사재기했다고 판명된 책들을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삭제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책들과 출판사, 모니터링 과정과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갑자기 빠진 책들을 살펴보면 ‘지목된 책들’을 추정할 수 있다.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펴낸 ‘세계명화비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이 출판사 박광성 사장은 4일 “마녀사냥”이라며 출판인회의를 성토하는 반박문을 내놓았다. “10주간 조사해 보니 이 책 98부를 우리 출판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이들이 사들였다는 것인데, 한 주에 10부꼴로 사들이면 과연 베스트셀러가 되느냐”는 게 반박의 요지다. 이 책은 최근 넉 달간 4만2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 같은 반발에 대해 출판인회의 김혜경 회장의 반응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처음 논란이 일 때는 “밑에서 보고해 와 그렇게 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대응했지만 5일엔 “우리 조사는 형평성을 갖췄다. 해당 출판사들에 보여 준 물증은 일부에 불과하다. 검찰이 나서면 물증을 공개하겠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공박의 수위가 올라가는 것은 조사한 측이나 조사당한 측 모두 현업 출판사 경영자인 데다 조사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적발하고 개선하는 방법은 더욱 엄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1998년에도 사재기 출판사가 공개됐지만 출판계가 아니라 제3자인 신문이 조사한 것이어서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한국 출판계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국민의 월평균 서적 출판물 지출액이 신문 대금을 포함해 1만397원으로 책 구입비는 사실상 제로(0)라는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보아 전체 독서시장을 늘릴 여지가 아주 크다는 말도 된다. 국민의 지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 출판계는 소모적이고 불투명한 논쟁을 최소화하는 대신 독서시장 확대에 힘을 쏟을 때다.

권기태 문화부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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