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의 방대한 저작 ‘세계의 공연예술기행’을 읽고

  • 입력 2005년 12월 5일 03시 00분


설레는 가슴으로 다시 만났다. 말 그대로의 해후(邂逅). 세 권으로 된 최정호의 ‘세계의 공연예술기행(사진)’과의 만남이다.

이 방대한 저작은 1968년에서 2004년까지 쓴 글들을 담고 있다. 1권은 196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공연예술기행이 주를 이루는 ‘예(藝)’, 2권은 무대예술의 ‘영원한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세계의 무대’, 3권은 예술과 정치의 교감과 갈등 관계를 짚어 나가면서 깊은 사색의 지평을 느끼게 하는 ‘예술과 정치’. 한 지식인의 생애에 띠를 이루고 있는 객석에서의 삶이 이렇게 켜를 이루며 다시 묶였다.

여기 실린 글을 처음 읽을 무렵 나는 저자의 ‘체험 가치’가 나의 체험이 되는, 체험의 재구성을 느끼곤 했다. 그 무대가 보이고, 그 노래가 들린다. 어느 순간 내가 객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복원해 주는 특이한 재현이 그 글에는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젊은 날은 최정호의 예술기행이 있었기에 척박하지 않았다고 향기로워한다. 품격 있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행복한 충격이었다. 지지리도 못난 분단국가의 시골에서 태어나 절망의 무게에 힘겨워하던 한 청년에게 ‘인간은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가르친 준엄함. 그것을 어찌 행복한 충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권 ‘세계의 무대’는 연재될 때의 제목이 ‘영원한 순간들’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며 그때의 글들이 바로 ‘영원한 순간’이 되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거기에 지난 세월을 수놓고 이제는 고인이 된 수많은 거장들의 아련한 이름들을 만나는 감회가 얹힌다. 다시 읽어도 새로운 이 ‘영원한 순간’과 같은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책은 대륙이다. 책 뒤의 ‘찾아보기’를 보고 있자면 20세기 예술가의 인명사전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아니다. 히틀러에서 슈바이처까지 등장하니 20세기 인명록이라고 해야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니체에서 조수미까지 실려 있다. 그렇게 해서 한 편의 글이 나무처럼 싱싱하고 이 나무들이 한 권으로 모이면서 숲을 이룬다. 그리고 이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자면 이 책은 하나의 대륙이구나 하는 감격에 이른다. 애석하게도 이 책에 등장할 기회를 놓친 20세기의 어느 거장이 저자의 꿈에 나타나 ‘이보게, 자네 책에 내 이름이 빠지다니, 이럴 수 있는가!’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예술기행을 다시 읽으며 내가 느끼는 행복에는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다. ‘예’에 실린 글들이 연재될 무렵 나는 한동안 신문도 구할 수 없는 강원도 오지에 틀어박힌 적이 있었다. 그때 여자친구는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였다. 첫 타향살이에 외로워하며 매주 집이 있는 춘천을 다녀오던 그녀는 그때마다 ‘예’가 실리는 주간지를 샀고, 그 가운데 저자의 글만을 오려 접어서 깨알 같은 편지글과 함께 부쳐 주곤 했었다. 그 여자친구는 지금 아내가 되어 이 책을 옆에서 함께 읽고 있다. 내가 1권을 펴들면 자신은 3권을 집어 들면서.

한수산 소설가·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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