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100주년 민영환을 다시 본다

입력 2005-11-29 03:00수정 2009-09-3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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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의 민영환
1904년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정공 민영환의 컬러 유리원판 사진. 열강의 위협 속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나라를 지키겠다는 선비의 강단진 모습과 냉혹한 세계 정세 앞에서 좌절한 근대적 정치가의 우울함이 교차하는 것 같다. 사진 제공 정성길 화성테마박물관장
30일로 서거 100주년을 맞는 충정공 민영환(閔泳煥·1861∼1905). ‘만고의 충신’으로만 알려진 그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연구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인은 주로 민영환을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순국열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인물이었으며 ‘천일책(千一策·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이라도 천 가지 중 하나는 쓸 만하다는 의미)’이라는 부국강병책을 제시한 개혁가였다.

민영환은 또한 명성황후의 조카로서 대한제국 말 외척정치의 핵심이었던 여흥 민씨 가문을 통해 조기 출세한 인물이었다. 그는 17세에 과거급제, 22세에 성균관 대사성(국립대 총장)이 됐으며 30세 전에 이조참판, 호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그의 생부는 탐욕으로 임오군란을 촉발해 군란의 와중에 척살된 민겸호였다.

우선 탁월한 외교관이자 개혁가로서 민영환의 면모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30일 오후 1시 반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와 고려대 두뇌한국(BK)21 한국학교육연구단이 ‘민영환의 개혁 구상과 외교활동에 대한 재평가’를 주제로 공동주최한다.

민영환에 대한 최초의 학술적 평전을 쓴 마이클 핀처 계명대 초빙교수는 ‘민영환-정치가, 외교관 그리고 애국자’라는 발표문에서 민영환의 생애를 3단계로 나눠 조명했다.

핀처 교수는 민영환이 충효를 중시하는 정치가에서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과 1897년 영국 빅토리아여왕 즉위 60주년 행사에 참석하며 국제정세에 정통한 외교관으로 변신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씨 세력에 맞서면서 국내 개혁을 도모하다가 애국자로 생을 마감했다고 분석했다.

이민원 보훈교육연구원 연구부장은 ‘민영환의 유럽 방문과 모스크바 외교’에서 민영환이 러시아 유럽 미국을 돌아 귀국했다는 점에서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한국인이었으며 현지 실정을 살펴봄에 따라 그의 대외인식이 친청-친러-친미로 바뀌었음을 주목했다.

이 연구부장은 또 민영환이 해외이민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02년 수민원(綏民院)을 세우고 총재를 맡아 2년간 7800여 명의 하와이 이민을 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들이 훗날 한국 독립운동의 주요한 지지 세력이 됐음을 강조했다.

최덕수 고려대 교수는 ‘민영환의 대외인식과 개혁론 연구’에서 민영환의 ‘천일책’과 그보다 한 살 많았던 박영효의 ‘상소’(1888년)를 비교했다. 최 교수는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 의도까지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천일책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외교정략론’에 필적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영훈(경제학) 서울대 교수는 최근 계간 ‘시대정신’에 기고한 글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전봉준은 그(민영환)를 가장 대표적인 탐관오리로 지목했다”며 “일제 침략에 대항해 목숨 바친 애국지사로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 그가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지목 받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를 대한제국 말 당시는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의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롭기 어려웠던 상황임을 보여 주는 사례로 지적했다.

유종호(영문학) 연세대 교수도 계간 ‘문학과 사회’에 기고한 ‘안개속의 길-친일문제에 대한 소견’에서 “민영환은 자결해서 충정공이 되었지만 체포되어 심문 받은 전봉준은 중앙 탐관오리의 대표적 인물로 민영환, 민영준(민영휘), 고영근을 들었다”고 밝혔다.

물론 민씨 일가를 부패 지도층으로 몰아붙여야 하는 정치적 입장에 서 있던 전봉준의 발언만으로 실제로 민영환이 부패한 관리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당시 지배계급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민영환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고려대박물관은 30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민영환의 피 묻은 옷이 보관돼 있던 방의 마룻바닥에서 돋아난 대나무(혈죽) 등을 촬영한 사진과 유족들이 기증한 유품 100여 점을 전시하는 ‘사이불사(死而不死), 민영환’ 특별전을 연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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