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수녀, 수험생-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좀 쉬세요”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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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수도원을 방문하는 친지들은 종종 수험생 아들딸 뒷바라지하는 고달픔과 초조함을 호소하면서 “당신들은 우리 같은 걱정 안 해도 되니 좋겠다”며 사뭇 부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보는 날 올해도 추울까 걱정했는데 날씨가 비교적 포근해 한결 마음이 놓였답니다.

‘…당신을 불러봅니다/내가 부를 때마다/어디서나 듣게 되는/당신의 응답/언제나/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외로울 때 어려울 때/부르기만 하면/눈물어린 계시로 당신은/내 안에서 살아납니다….’

박목월의 시 한 구절을 읽으며 그동안 정성을 다해 수험생 뒷바라지한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과 노고를 생각합니다. 수능 볼 무렵이면 성당이나 교회, 절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며 두 손 모으는 그 간절한 모정에 감동하며 함께 기도하는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올해도 마음으로 응원할 뿐 아니라 입시생들을 위해 큰소리로 기도하던 우리 목소리를 들으셨지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고 기다림의 눈물인 이 땅의 모든 어머니께 작은 위로의 꽃 한 송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다시 초조한 마음이 되실 테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몸과 마음을 좀 쉬세요. 산과 바다에도 가시고, 음악도 들으시고, 좋은 책도 읽으시며 자신을 위로하는 여유와 시간을 가지도록 하세요. 오로지 자식에게 헌신하느라 돌볼 틈이 없던 자신을 찾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셔야만 다시 뒷바라지할 내적인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밤낮으로 공부에만 매달려 정신없이 살았던 우리 수험생들도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기다리며 힘들어도 밝게 웃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웃어야만 가족들도 행복하니까요.

설령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게 되더라도 울면 안 됩니다. 실수를 통해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꼭 배우세요. 여러분은 가족들의 소중한 꿈이고 희망이니까요. 여러분의 오늘이 있기까지 사랑으로 배려한 가족과 선생님들에게 진정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아주 작은 감사의 표현이라도 전하려고 애쓰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세요.

인터넷에만 빠져 친구와의 우정이 소홀해지는 건 아닐까, 가족과의 대화가 멀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네요. 일과표를 지혜롭게 잘 짜서 원하는 공부도 틈틈이 하고 미루어 둔 효도도 하고 친구들과 우애를 다지는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집안일을 돕고 정리하는 건 어때요? 부모님과 함께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죠?

며칠 전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하늘로 쏘아 올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념 레이저 쇼를 수녀원 베란다에서 봤습니다. 분홍빛 하트 모양의 불꽃들이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그 고운 불꽃과 같은 사랑을 여러분께 드리면서 한 번밖엔 없는 젊음을 더 알뜰하고 보람 있게 보내는 여러분이 되도록 기도할게요.

시험 끝나고 허탈한 마음을 혹시라도 나중에 후회할 ‘나쁜 일’에 팔지 말고 순결하게 잘 관리하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자유와 방종을 잘 분별하는 슬기로움이야말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선물일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쓴 시의 한 구절로 이 미흡한 러브레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너희가 기쁠 때엔 우리도 기쁘고/너희가 슬플 때엔 우리도 슬프단다/너희가 꿈을 꿀 땐 우리도 꿈을 꾸고/너희가 방황할 땐/우리도 길을 잃는단다/가끔은 세상이 원망스럽고/어른들이 미울 때라도/너희는 결코/어둠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지 말고/밝고, 지혜롭고, 꿋꿋하게 일어서다오/어리지만 든든한/우리의 길잡이가 되어다오/한 번뿐인 삶, 한 번뿐인 젊음을/열심히 뛰자/아직 조금 시간이 있는 동안/우리는 서로의 마음에/하늘빛 창을 달자….’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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