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북한 정치史 소련 중장이 주물렀다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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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치드라마는 ‘쉬띄꼬프’의 책상에서 기획되어 연해주군관구와 소련군사령부 지도자들 회의에서 확정되면 모스크바의 재가를 얻은 후 북한 지도부에 전달된다. 소련군사령부는 북한 지도부를 독려하여 기획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드라마의 대본과 조선인 출연자들을 준비하고 기획자의 최종적인 결재를 받아 드라마를 상영한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외사료 총서 10권으로 출간된 ‘쉬띄꼬프 일기(1946∼1948)’의 편저자인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이후 북한 정치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은 소련 극동군 정치위원으로 북한주둔 소련군을 지휘한 테렌티 포미치 스티코프(1907∼1964·사진) 중장이 남긴 일기 중 한반도 관련 내용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극동군 정치위원에 이어 북한주재 소련특명전권대사(1948∼1951)도 지낸 스티코프는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될까봐 개인적 기록을 남기지 않은 다른 소련 지도층 인사와 달리 60권의 일기를 남겼다. 전 교수는 러시아 유학시절이던 1995년 스티코프의 가족을 통해 1946∼48년에 쓴 4권의 일기를 입수했다. 그 내용의 일부는 그해 국내에도 알려져 학계에 큰 반향을 낳았으나 우리말 번역은 10년 만에 이뤄졌다. 1949∼50년에 쓰인 4권의 일기를 추가 발굴하려 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이후 러시아어 필기체로 된 원문 해독에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 사료는 △소련군이 해방군을 자처했지만 본질적으로 미군과 같은 점령군으로 군정통치를 펼쳤으며 △북한정부 수립과정이 철저히 소련의 설계로 이뤄졌음을 증언한다. 이 사료는 또 △남한 좌익정당의 이합집산이 소련의 지시에 의거해 이뤄졌으며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한 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에 소련이 반대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분단의 책임이 미군정과 한국 우익에 있다는 수정주의사관의 오류에 대한 반증자료라는 점에서 향후 냉전사 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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