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너무나 인간적인…안알려진 편지등 81점 첫공개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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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찾아온 집안 머슴을 통해 편지를 보았다. 해가 바뀌고 받은 소식이어서 큰 위안을 주는구나.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멀리 바다를 건너야 하는 데다 나쁜 기운이 한창 심할 때여서 마음이 뒤숭숭하구나. 나는 입과 코에서 열이 나 여전히 고통스럽고 눈병이 갈수록 심하다.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 병오(1846년) 3월 2일 부(父)’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가 역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모함을 받고 9년간 제주에 유배됐던 시절, 이순(耳順)의 나이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원문은 한문)의 일부다. 당대의 대학자이자 유명 서예가로서의 풍모보다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건강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편지를 비롯해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추사의 편지 39점, 시 26점, 산문 8점, 그림 8점 등 81점이 11∼20일 경기 과천시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추사의 작은 글씨전’(02-504-6513·무료)에서 공개된다.

추사가 말년에 과천의 한 초당에 머문 인연을 계기로 과천시와 추사연구회 등이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는 편지 66점을 비롯해 시 34점, 산문 13점, 그림 11점 등 124점이 나오며 그 가운데 81점이 개인 소장가들이 가지고 있는 미공개작이다.

추사연구회 김영복 연구위원은 “추사의 인간적인 풍모를 알기 위해 최근 수년간 후손들을 통해 편지 등을 갖고 있는 20여 명의 소장가를 개별적으로 만나 작품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처음 공개되는 추사 김정희의 산수화 ‘미가산수(米家山水)’. 중국 서예가인 미가에 대한 시를 지어 붙인 산수화다. 제작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 제공 추사연구회

김 위원은 “특히 꾸밈없는 삶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대화, 일상의 잔잔한 소회와 인생역정 등 추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 벼루 10개를 구멍 내고 붓 1000개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대서예가 추사가 말년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 나온다.

‘바람이 매서운데 보내신 편지를 받으니 문득 팔뚝 안의 삼백구비(三百九碑·중국 한·위 시대에 예서로 쓴 309개의 비문으로 추사가 추구한 서체의 정수들)가 마침내 일상의 (내가 쓰는) 편지에까지 미쳐 감상하고 음미할 중요한 공부거리를 줍니다. 이(경지)를 얻으니 한 아름 기쁨에 젖으며 집을 흔들어대는 걱정을 순간 잊습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추사체 연구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쳤다. 단, 편지와 더불어 공개되는 제문(祭文) 3점은 추후 정밀감정을 해야 한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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