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안도에게 보낸다’… 이황선생 ‘인간적 면모’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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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에게 보낸다/퇴계 이황 지음·정석태 옮김/384쪽·1만3000원·들녘

조선시대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하던 1567년. 이 무렵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학문적 명성에 힘입어 조정으로부터 입궐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퇴계는 건강을 이유로 번번이 관직을 사양했다. 조정에선 직위를 올려 제안을 계속했지만 퇴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퇴계를 비난하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해 8월 경북 안동에 은거하던 퇴계는 서울에 있는 손자 이안도(李安道·1541∼1584)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병이 중해 예조판서를 수행할 수 없었다. 새 임금님(선조) 은혜를 저버린 일은 부끄러웠으나 하는 일도 없이 봉급만 받아먹을 수 없었다. 또 추위가 닥치는데 객지에서 죽게 될까봐 두려워 너무나 급박해 곧바로 돌아왔다. 다시는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 짝이 없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그래도 자신에 대한 비난이 가라앉지 않자 두 달 뒤인 10월 손자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나를 비방하거나 의심하거나 나에 대해 물으면 ‘제 할아버지께서는 그때 참으로 병이 위중했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봉급이나 받아먹으면서 객지에서 죽고 싶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지, 만약 지금까지 살아 있을 줄 일찍이 알았더라면 어찌 이같이 하셨겠습니까’라고 대답하면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잘 얘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꼿꼿한 대선비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나 보다. 퇴계가 44세 때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16년 동안 손자에게 보낸 편지 125통을 한데 모은 책. 퇴계의 인간적인 체취가 물씬 배어난다.

1566년 10월 초 과거를 치른 손자에게 보낸 편지엔 할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하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아직도 합격자 명단을 보지 못하고 있다. 누가 합격하고 누가 낙방하였느냐?”

그러나 자신의 이런 모습이 다소 쑥스러웠던지 10월 23일엔 낙방한 손자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애초에 네가 높은 점수를 받는다면 요행이라 여겼으니 이제 또 무슨 아쉬움이 있겠는가.”

애써 태연한 척하는 퇴계의 모습. 하지만 손자의 낙방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할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퇴계는 손자의 낙방 답안지를 구해 검토한 뒤 그 내용을 담아 이듬해 4월 편지를 부쳤다.

“네가 과거에 응시해 제출한 논문을 보니 위쪽 4행과 5행은 의미가 너무 보잘것없구나. 그래서 등수에 들지 못한 것이니….”

대학자의 손자 사랑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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