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현종씨 “‘들불’, 내가 만든 단어” 상표등록 신청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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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번지는 불길, ‘들불’이란 단어는 사회운동이 활기를 띠던 1980년대 이후 야학과 주점 책방의 이름으로, 시어(詩語)나 노랫말 대자보 등에 그야말로 들불처럼 퍼지면서 쓰였다. 이 말은 옛적부터 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창작품일까.

중진 작가 유현종(65·사진) 씨는 최근 대표 소설인 ‘들불’을 행림출판사에서 세 번째 펴내면서 ‘들불’이란 단어를 고유 상표로 인정해 달라고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결과는 10월경 나올 예정이다. 그는 “‘들불’이란 말은 원래 우리말에 없었다. 내가 1972년 ‘현대문학’에 연재하면서 쓴 말이다”라고 말했다. ‘들불’은 그 뒤 오랫동안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다가 워낙 널리 쓰이자 몇 년 전에야 등재됐다는 것이다.

유 씨는 특허청에 상표등록 신청까지 한 이유에 대해 지난해 12월 ‘황토현의 들불’이라는 소설이 나와 크게 당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들불’이란 말은 내가 만들어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는 뜻을 ‘그쪽’에 전달했다. 하지만 알아보니 현행 저작권법만으로는 제목에 대한 권리를 보호받기 힘든 점이 있었다. 출판계 친구들과 상의하니 특허청에 등록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들불’이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등록을 받게 되면 연극 드라마 영화 소설 등 문예물에서는 유 씨가 독점사용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카페나 서점 단체 이름 등에서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유 씨는 “내가 나고 자란 전북 김제 만경평야에는 늦겨울 풀이 마르면 자연히 불이 나서 훨훨 옮겨 다니곤 했다.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그 불이 몇 달 동안 눈앞으로 지나다녔다. 연재를 시작하려니 자연히 ‘들불’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소설 ‘들불’에서 파생한 제목으로 작고한 작가 최명희 씨의 ‘혼불’을 들었다. 유 씨는 “이름 없는 농투성이가 죽으면 혼이 빠져 나가 구천을 떠도는데 그걸 ‘혼불’이라고 ‘들불’에 썼다. 그런데 최 씨가 어느 날 찾아와 그걸 보고 새 소설 제목으로 삼았다고 인사를 하더라”고 말했다.

‘들불’은 1976, 81년 책으로 발간됐다. 이번 세 번째 ‘들불’에는 문학평론가 김병익(문예진흥위원장) 씨와 북한의 중진 평론가 정형준 씨의 평론이 함께 실렸다. 정 씨는 “‘들불’은 (북한 작가) 홍석중의 ‘높새바람’ 등 북반부의 뛰어난 역사소설과 함께 통일 후 우리 민족문학의 화원에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 있을 것”이라고 썼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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