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유대 5천년의 지혜…‘탈무드’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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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마빈 토케이어 지음·정진태 옮김/144쪽·2800원/범우사(2002년)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검게 되어서 굴뚝에서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로 내려 왔다.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랍비의 질문에 ‘탈무드’를 배우겠다며 시험해 달라던 사람은 얼굴이 더러운 아이라고 얼른 대답한다. 하지만 랍비의 대답은 차갑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얼굴이 깨끗한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더러운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얼굴을 씻는 편은 깨끗한 아이 쪽이라는 것이 랍비의 설명이다.

깜빡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그는 딱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랍비를 조른다. 그런데 그러마고 승낙한 랍비가 웬일인지 아까와 같은 문제를 내준다. 의아했지만 그는 신이 나서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랍비의 대답은 차갑다.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당신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랍비의 대답은 이렇다. 두 아이가 굴뚝을 청소한다면 한 아이의 얼굴은 깨끗하고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게 되어 내려 올 수는 없다고.

‘탈무드’의 머리말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편 재미있고 한편 말장난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우리들이 가진 상식이나 지식의 한계를 일러 준다. 특히 논리적 사고의 출발점인 전제가 잘못된 상황에서 답안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이 이야기는 힘주어 깨우친다. 눈에 보이는 곁가지(현상)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본질)를 밝히는 것이 바로 논리다. 솔로몬의 판결들에서 보듯 수많은 삶의 문제를 해결한 논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산물이다. ‘탈무드’는 깊은 사색과 내면적 성찰의 산물인 유대 5000년의 지혜를 제공한다. 그 방대한 ‘탈무드’의 내용 중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부딪히는 문제들과 관계되는 부분만을 골라 해석했다. 구체적 사례를 통해, 때로는 깊은 비유를 통해 ‘탈무드’는 복잡하고 알쏭달쏭한 세계로부터,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수많은 지식으로부터 논리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하리라 생각한다.

삼성과 국가정보원이 개입된 불법과 비리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는 곁가지를 따지다 그렇게 묻혀 버릴지도 모를 이 사건의 본질을 생각하다 보니 ‘탈무드’의 서문이 자꾸만 떠오르는 이즈음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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