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천재들의 불화사건’…천재들의 사랑 질투 배신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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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불화사건/이덕희 지음/280쪽·1만3000원·동아시아

퇴비 속에서 자란 멜론이 훨씬 달듯이 천재도 온갖 악덕이 스민 토양에서 더 번성하는 것일까.

‘음악의 빛으로 인류를 인도했던’ (리스트) 바그너. 그는 오만하고 이기적이었다.

너무나 비범하기 때문에 인류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는 죽는 날까지 “세계가 자신의 생존에 빚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주체하지 못할 시기와 질투심, 과대망상, 도덕불감증…. 그리고 참으로 기만의 명수였던 바그너. 그 잔혹함과 배신의 칼날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헌신했던 지휘자 뵐로를 겨누었다.

뵐로의 아내이자 두 딸의 어머니였던 코지마와 바그너의 간통사건은 당대의 스캔들이었다. 추문에 민감했던 루드비히 2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바그너는 희대의 사기극을 기획(?)한다.

바그너는 코지마로 하여금 왕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부디 우리가 치욕과 불명예를 안고 이 나라를 떠나지 않도록 저의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 주소서…. 저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이들에게 아버지의 명예로운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물려주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세 아이 중 하나는 바그너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이었으니 그 뻔뻔스러움이란….

월간 ‘객석’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이 책은 때로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때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아로새겼던 천재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불화(不和)를 그리고 있다.

불화와 화해의 반복 속에서 예술혼을 만개시켰던 토스카니니와 푸치니, 광적인 팬들의 대립 때문에 등을 돌려야 했던 칼라스와 테발디, 50탈레트의 빚 때문에 찢어진 도스토예프스키와 투르게네프….

프랑스 문학사를 빛낸 두 시인, 베를렌과 랭보는 치명적인 연인이었다.

10세 연상이었던 베를렌에게 악동 랭보는 ‘악의 꽃’처럼 피어났다. 베를렌은 랭보에게서 ‘지상에서 추방당한 천사의 연푸른 눈’을 보았고 이후 그들의 로맨스(?)는 동성애 사상 가장 기괴한 사건을 연출한다.

동성애 소문에 대해 베를렌은 “세상의 모든 녀석들에게 우리의 ‘순결한 엉덩이’를 보여 주겠다”고 떠벌리기도 했으나 끝내는 ‘풍만하고 넘쳐 흐르는 정사(情事)’를 찬미하기에 이른다.

떠나가는 랭보를 붙잡기 위해 권총으로 위협했던 베를렌. 그는 마지막까지 랭보를 잊지 못했으나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를 떠돌던 랭보는 ‘과거의 사랑’을 한껏 비웃었으니….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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