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말고 쇼핑하세요’ 편의시설 놀이

  • 입력 2005년 2월 27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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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현대백화점
사진제공 현대백화점
“남녀의 기호?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그릇에 관심 많은 여자 많듯이, 남자들 역시 대부분의 여자에게는 좀체 이해하기 힘든 데 돈 쓰는 경우도 많죠. 저희 남편 경우엔 플스 게임팩! 그거 빌려도 되련만, 뭘 그리 소장하겠다고 꾸역꾸역 사들이는지….”

“그릇 사는 거 좋아하는 남편이 있을까요? 자동차 장착이나 장식품이면 몰라도…그나저나 백화점이라도 동행하는 남편이라면 업어주겠습니다. 백화점하고는 ‘웬수’가 졌는지….”

한 요리사이트에 올라온 주부들의 사연이다. 남자와 여자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르고 그래서 시간을 보내는 패턴도 다르다. 이 같은 차이는 남녀 간 크고 작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진제공 신세계백화점

○ 여자, 남자와 모두 다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이경미 씨(38)는 지난 주말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자신은 동동거리며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굴며 케이블TV의 스포츠 채널과 게임중계 채널을 번갈아 돌리는데 화가 났던 것.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 미디어리서치가 1월 한 달간 케이블TV 시청 경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자 시청자의 ‘톱 10’에 MBC ESPN(스포츠 중계) YTN(뉴스) 온게임넷(게임 중계)이 들어있는 반면 여자의 경우 JEI재능방송(교육)이 들어있었다. 또 여자들의 ‘톱 10’에 드라마 채널이 랭크돼 있었던 데 비해 남자의 경우 수퍼액션(액션영화)이 상위에 올라 있다.

이 회사의 미디어팀 김나경 씨는 “드라마 ‘해신’은 남자 시청자의 시청률이 두드러진다”며 “남성적인 사극은 따로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과 남성의 생활시간도 다르다. 통계청의 2000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쇼핑시간은 41분으로 남성의 37분보다 길다.

○ 아이들도 남자애들은 달라요

현대백화점 중동점 9층 갤러리의 ‘피로에 지친 남편을 위한 북카페’. 마지못해 아내의 쇼핑에 동행했던 남편들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DVD를 시청한다.

대부분 2시간 넘게 쇼핑하는 아내와 떨어져 무료함을 달래지만 일부 젊은 남편들은 짬짬이 들르는 아내를 따라나서기도 한다. 최근 북카페 이용자 100명을 조사했더니 30대(40명) 40대(37명)가 20대(22명)보다 많았다.

판매기획팀 김길식 차장은 “독일 영국 등 해외 사례에서 착안했지만 무료로 운영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백화점 목동점도 지난해 말부터 2층 여성정장 매장에 ‘까페-허즈’를 운영하고 있다. 공짜 허브차를 마시면서 시사 낚시 등산 레저잡지를 읽을 수 있고 스포츠 바둑 증권 등 케이블TV를 시청할 수도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봄 강남점 8층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남편들이 힘들게 쇼핑하지 않고 아이들과 쉴 수 있도록 ‘키즈 카페’를 설치한 데 이어 최근 인천점 지하 2층 주차장 주변에 아예 ‘아빠들의 쉼터’ 공간을 마련했다.

현대백화점 중동점 북카페에 있던 차모 씨(40)는 “운전사로 아내를 따라 나왔다가 쇼핑하는 것은 싫고 해서 이곳에 들렀다”고 말했다. 북카페를 담당하는 이정재 씨는 “남자아이들도 쇼핑을 싫어해 아들은 아빠와 함께 이곳에 머물고 딸은 쇼핑하는 엄마를 따라나선다”고 전했다.

○ 그래도 조금씩 양보하면…

왜 여자들은 쇼핑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스포츠를 좋아할까.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 씨는 저서 ‘남자는 왜? 여자는 왜?’에서 “남녀가 외로움을 달래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정신과)는 “여자들은 쇼핑을 좋아하는 반면 남자들은 사회문화적으로 자주 술을 마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탐닉행위의 양상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저술가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교양’이란 저서에서 “남성들의 축구에 대한 애착은 광적”이라면서 “그러나 지난번 시합에서 누가 골을 넣었고 누가 교체되었는지를 줄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축구 전문가는 될지언정 교양인 축에는 끼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 ‘전람회에서 여자에게 30∼40분씩 자동차 구조에 관한 전문 지식을 동원해 열을 올려가며 포르셰가 페라리보다 더 좋은 차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다지 교양 있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다.’

교양인이란 개념을 동원하지 않는다 해도 남녀가 서로 피곤하게 느끼지 않으려면 자신의 ‘기호’를 너무 내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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