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2004 문화계…문화계 키워드<下>

  • 입력 2004년 12월 15일 2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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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화계의 흐름을 몇 개의 핵심어로 되짚어 볼 수 있다. 고대사 영역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근현대사 영역에서 과거사 진상규명 논란 등으로 치열한 ‘역사전쟁’이 펼쳐졌다. ‘용사마 열풍’으로 상징되는 ‘한국 드라마’의 세계시장 공략이 이어졌고, 불황을 극복하려는 심리적 욕구를 겨냥한 ‘희망 마케팅’이 성공을 거뒀다.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의사소통의 진화를 보여준 ‘싸이질’은 대중을 사로잡았고, 대량 복제시대에 대한 저항으로서 원본과 원음을 살리려는 ‘오리지낼러티’의 바람도 불었다.

○역사전쟁

2004년 한반도는 ‘역사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먼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뿔피리 소리 요란하게 한반도를 휩쓸었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중국 정부가 그 배후에 있다며 자명고를 울렸지만 정부는 ‘조용한 외교론’을 들먹이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반도 고대사가 삭제되고, 고구려 유적이 자리 잡은 지린(吉林)성 일대의 고구려사 편입 캠페인으로 허를 찔리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한다며 우왕좌왕했다.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일본 우익의 ‘자학사관 반성론’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그랬던 정부 여당이 안으로는 우리 역사를 놓고 역사전쟁의 기치를 들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의 고동소리는 한국 근현대사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정부 여당의 역사전쟁은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연좌제 시비로 확대되면서 한국사회 전체가 과거사의 망령에 사로잡히게 됐다는 비판을 낳았다.

학계에서는 고종시대가 자생적 근대화 역량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과 그렇지 못했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학문적 순수성 때문에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오리지낼러티

우리 사회의 정보통로가 빠르게 디지털화하면서 책이나 가요, 영화 등 갖가지 문화 콘텐츠를 복제(copy)하는 일이 아주 쉬워졌다.

이 같은 복제 경향에 저항해 문화 콘텐츠의 저작권을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문화 콘텐츠의 ‘오리지낼러티(Originality)’를 강화하려는 시도였던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책 내용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하기 어렵게 하려는 시도였다. 박상순 민음사 주간은 “책의 표지 이미지를 독창적으로 하고, 종이의 질감을 강화하며, 책 내용에 그림이나 사진을 많이 넣는 등 ‘장식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움직임이 출판계에서 일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수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찾는 욕망이 나타났다. 갖가지 인터넷 음악 사이트와 MP3의 대중화로 음반 시장은 붕괴된 반면 라이브 콘서트 등의 공연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복제된 음악에서 벗어나 육성(肉聲)을 들어보려는 대중의 욕망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올 한 해 음반 시장의 침체를 만회한 것은 수동적으로 감상하던 대중이 적극적으로 라이브 콘서트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한국드라마

한국 드라마가 세계로 뻗어나간 한 해였다.

3, 4년 전부터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한국 드라마는 올해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뜨면서 ‘용사마 신드롬’으로 꽃을 활짝 피웠다. ‘겨울연가’가 파급시킨 경제 효과가 2조3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파리의 연인’이 일본에 7000만 엔(7억여 원)에 팔렸고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슬픈 연가’는 일본과 대만에서 3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오! 필승 봉순영’은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에 총 4억1500만 원에 팔렸으며, ‘두 번째 프러포즈’는 대만에 회당 1600만 원에 판매되는 등 한국 드라마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수출을 겨냥한 드라마의 해외 촬영도 활발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인도네시아)을 시작으로 ‘파리의 연인’(프랑스) ‘풀하우스’(태국)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미국) ‘미안하다 사랑한다’(호주) ‘유리화’(일본) 등이 해외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러브스토리…’ 50억 원, ‘유리화’ 46억 원 등 웬만한 드라마는 수십 억 원대의 제작비를 쏟아 부었지만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또 삼각관계와 신데렐라 스토리 등 뻔한 소재가 반복되고 있어 한국 드라마 열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희망마케팅

경제 침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은 올해 문화계에서는 희망을 갈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겨냥한 ‘희망 마케팅’이 성공을 거뒀다.

TV 드라마에서는 희망을 실현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웅시대’(MBC), ‘불멸의 이순신’(KBS1), ‘해신’(KBS2) 등이 잇따라 제작 방영됐다. 또 ‘오! 필승 봉순영’(KBS2), ‘두 번째 프러포즈’(KBS2) 등 보통사람의 성공과 희망을 담은 드라마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계에서는 생존을 위한 최후 보루로서 가족이라는 보호막에 기대려는 사회 심리적 배경을 마케팅에 활용했다. 전과자 딸과 형사 출신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가족’이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눈물바람을 일으키면서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우리 형’과 ‘효자동 이발사’ ‘인어공주’도 가족주의 영화들로 꼽힌다.

세계 각지 어린이들의 참상을 통해 이들과의 나눔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탤런트 김혜자 씨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출판 불황에도 불구하고 3월 출간 이후 40만 부가 팔렸다.

희망을 주제로 한 광고도 주목을 끌었다. 어깨 처진 아빠들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비씨카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교보생명)라는 노래를 들으며 힘을 얻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싸이질

올해 인터넷의 최대 화두는 ‘싸이질’이었다. 싸이질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만들어 글과 사진을 올리거나 타인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것을 일컫는 말. 9월 가입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싸이월드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다.

10대와 20대는 미팅이나 소개팅에 앞서 상대방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숫자로 보면 싸이월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올해 11월 기준). △1200만 명:가입자 수 △60만 명:평균 동시 접속자 수 △150만 개:하루 평균 도토리(싸이월드 화폐 단위로 개당 100원) 소비량 △5시간 10분:한 달 1인당 평균 체류 시간 △90.11%:19∼24세 인터넷 이용 인구 중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용 비율.

그러나 사생활 침해 논란 등 부작용도 일고 있다. 미니홈피에 올린 글이나 사진이 타인의 미니홈피에 쉽게 옮겨지기 때문이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싸이질 열풍에 대해 “자기표현 욕구를 자극하며, ‘1촌’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도토리로 선물을 주고받고 정보를 공유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스템이 한국인 정서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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