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작가 이해기씨 “金泥禪畵는 부처님 허락받아야 나와”

  • 입력 2004년 5월 20일 18시 46분


호흡을 가다듬고 종이에 붓끝을 댄다. 수행승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듯 붓끝에서 나오는 0.5mm의 가는 선에 신경을 집중한다. 한순간 망상이 들면 붓놀림이 엇나간다. 어느덧 마음과 붓이 하나가 된 듯 무아지경에서 그림을 그린다.

10여년간 금니선화(金泥禪畵)를 그려온 이해기씨(45)가 26일∼6월 2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라메르(02-730-5454)에서 첫 개인전을 갖고 부처의 생애를 담은 30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금니선화는 금가루와 물고기 부레로 만든 아교풀을 섞어 불화를 그리는 기법. 고려시대 불교 경전의 이해를 돕는 그림을 그릴 때 쓰였으나 이후 맥이 끊겼다. 금니선화는 수천개의 선을 정확히 그려야 하는 섬세함이 요구된다.

“가로 세로 50cm 그림을 그리는 데 하루 8시간씩 작업해 평균 3개월 정도 걸립니다. 수정이 불가능해 중요한 선을 잘못 그리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해요. 금니선화는 부처가 허락해야 그릴 수 있는 작품 같습니다.”

그는 향을 피운 뒤 그림을 그린다. 종교적 배경도 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해기씨는 세밀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오른손을 보호하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 오른손을 거의 쓰지 않고 오른쪽으로도 누워자지 않는다고 했다.-사진제공 불교신문

동국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3년간 탱화를 그리다가 스님이 되기 위해 법주사에 들어가 행자로 지낸 적도 있다. 그러나 속세로 나온 그는 채색불화를 그리다가 금니선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불교 미술은 현재가 과거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금니선화를 통해 전통을 현대화하는 방식으로 불교 미술의 수준을 높이고 싶습니다.”

그는 고려시대의 그림과 달리 선의 흐름과 강약의 조절을 통해 입체감을 살렸다.

“금니선화를 그리는 일은 수행과 비슷합니다. 그림이 잘 되면 업이 녹는 듯해요. 앞으로 10년 동안 100점을 그려 한곳에 기증하려고 합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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