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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9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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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이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이것은 건축물에서 읽어 낼 수 있는 내용이 다양함을 의미한다. 건축물은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예술품이다. 특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형 공공건물들은 더욱 그러하다. 하나의 예술품인 동시에 그 자체가 역사요, 공학의 집결체이다.
따라서 건축물을 연구하고 읽어 내는 관점도 다양하다. 일반인은 역사적 배경과 에피소드 같은, 보다 일반적인 정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여행정보의 1순위 역시 건축물이다. 크기나 높이 같은 물리적 기록도 대중적 호기심의 중요한 대상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정교하고 세밀한 예술적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어려운 미학 개념이 동원되고 전문용어가 등장한다.
이런 두 시각 사이에는 큰 간극이 생긴다. 어느 분야에나 있는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차이다. 건축에서는 그 차이가 유독 심하다. 건축은 일반인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분야인 동시에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건축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암암리에 그어져 있다. 대중은 항상 불만이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정치도 했다지만 이 둘에 관한 정보는 항상 따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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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을 합쳐 놓은 묘한 책이 나왔다. 하나의 건축물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종류별로 모아 백과사전 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샤르트르 성당을 보자. 설명은 연대기와 주소로 시작된다. 헨리 애덤스의 촌평도 인용되어 있다. 샤르트르라는 지역과 이 성당이 고딕 건축에서 갖는 의미, 뾰쪽 아치가 가져다 준 힘의 균형과 공간적 융통성, 플라잉 버트레스가 만들어 내는 역동성, 실내 구성과 건물 골격 전반에 작동하는 구조체계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다소 전문적인 이런 설명은 성당의 역사로 넘어가면서 쉬운 얘기로 변한다. 장인들의 시공작업이나 성당 전체를 가득 메운 조각상과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설명 등이 그것이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런 설명이 건물마다 동일하게 반복된다. 편제도 특이하다. 일곱 개의 기능 유형에 따라 분류했다. 대상은 동서고금을 오가며 각 기능에 대표적인 건축물 70개를 ‘엄선’했다. 역사적 순서에 집착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연대기만 제시하고 건물에 얽힌 시대배경에 대한 간략하고 쉬운 설명으로 대신했다. 시각자료도 도면 사진 이미지 그림 등 종류별로 골고루 모아 놓았다. 전문성도 만만찮다. 전공자들 사이에서 오갈 만한 전문적 정보도 함께 갖추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다소 팍팍한 정보 나열에 머문 점이다. 걸작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얘기는 잠시나마 숨이 멎는 웅변이요, 명품에서 얻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정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치라는 생각을 해본다.
임 석 재 이화여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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