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눈높이 육아]‘상상속 친구’와 노는 자녀

  • 입력 2004년 3월 28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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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된 석이의 가장 친한 친구, 어쩌면 유일한 친구는 엄마 아빠보다 힘이 세고 석이의 말만 듣는 ‘코브라사우루스’라는 공룡이다. 털이 부숭부숭 무섭게 생긴 코브라사우루스는 날개도 있어서 외계인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지만 집에 있을 땐 엄마가 싫어하는 일들만 골라 해서 석이를 야단맞게 한다. 엄마 아빠가 고함을 칠 때면 코브라사우루스는 석이를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간다.

엄마는 자신의 잘못을 공룡의 탓이라고 우기는 석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에 왔다. 혼자 중얼거리고, 헛것을 보는 아이가 걱정되어 인터넷을 뒤졌더니 정신분열증의 증상과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은 상상속의 친구를 만들곤 한다. 아이가 첫째이거나 독자일 때 이런 현상은 더 잘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비정상적인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가상의 친구는 오히려 아이의 상상력이 그만큼 발달하였음을 대변해준다. 창조적인 아이일수록 더 그럴듯한 친구를 만들고,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사회성은 물론 다른 여러 방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아이가 현실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면 그 친구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잊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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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친구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현실을 더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심한 아이는 함께 놀아줄 누군가가 필요하고, 슬픈 아이는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고, 꾸중만 듣는 아이는 자신이 야단칠 수 있거나 자신의 잘못을 떠넘길 누군가가 필요하다. 결국 상상 속의 친구는 아이가 겪는 심적 어려움을 잘 드러내주는 마음의 거울과도 같다.

때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가상의 친구가 현실이라고 우기거나, 동네나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가상의 친구와만 놀려는 아이가 있다. 부모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고, 꾸중을 피하려는 수작이라고 혼을 내면 낼수록 아이는 더욱더 상상 속의 친구에게 매달리게 된다. 전문의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아이들을 살펴보면 부모가 서로 심하게 싸우거나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아이들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다. 단지 아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막 같은 현실에서는 신기루라도 필요한 것이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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