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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1월 30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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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실제 집에서는 조 대표가 쓴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남편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줄곧 쓴소리를 해 왔지만 정치인치고는 비위가 약한 사람이지요. 골프도 안 치고, 술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기자들과 접촉도 활발하지 못하고…. 보다 못해 ‘제발 융통성 있게 하라’고 소리치면 그냥 못 들은 체 하죠.”
김씨는 그런 남편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시아버지(조병옥·趙炳玉 선생)의 간판이었던 나비넥타이를 매 보라고 권했지만 매번 ‘거절’ 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이 외유내강형인 배경에는 가정환경도 있었죠. 국회의원이 되고도 시아버지와 아주버니(조윤형·趙尹衡 전 국회부의장), 내 이름에 둘러싸여 있었죠. 한동안 연극계에서는 ‘김금지 남편이 도대체 누구냐’고도 했어요.”
김씨는 남편이 당 대표가 된 데 대해 “정말 시대가 변했다”고 평가했다. “남편은 전통적 의미의 당 대표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만큼 정치 환경이 깨끗한 이미지를 원하고 당도 내년 총선 간판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요. 남편이 나이(68세)보다 젊어 보이는 것은 쓸데없는 데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일 거예요”라고 풀이했다.
그는 경선 기간 중 추미애(秋美愛) 장성민(張誠珉) 후보 등이 ‘추다르크’ ‘토니 블레어’ 등을 거론하며 젊음을 앞세운 데 대해서는 “어떻게 나이 먹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꼬집기도 했다.
“남편이 대표 경선에 나가는 바람에 ‘부부가 설친다’고 욕먹을까봐 연극 40주년 기념 작품 홍보도 못했다”는 그는 3일부터 서울대학로 정미소극장(02-747-4188)에서 올릴 ‘선셋 대로’(빌리 와일더 원작) 연습을 이유로 자리를 뜨면서 노 대통령과의 인연을 귀띔했다.
“노 대통령이 13대 의원일 때 우연히 만났죠. 청문회 스타로 한창 뜨던 노 대통령은 내 연극을 봤다며 좋아했어요. 그래선지 주위 사람들이 노 대통령 보고 ‘맛이 갔다’고 막말하면 ‘나쁜 사람은 아니다’고 변론도 합니다. 물론 남편은 ‘내 앞에서 대통령 얘기하지 마라’고 역정을 내지만….”
65년 제2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85년) 등 70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김씨는 ‘극단 김금지’ 대표를 맡아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연극계에서도 알아주는 직설화법의 소유자. 한 중견 여성 연극인은 “발성 하나라도 불안정하면 ‘너 기본이 안됐다’며 호통을 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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