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드라마속 삼각관계 여성들 '대립'서 '우정'으로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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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속의 가족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한 남편과 두 여성이 공존하는 ‘가족’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을 사이에 두고 배우자와 남편의 연인(또는 여자 친구)이 질시나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19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태양의 남쪽’(극본 김은숙 강은정·연출 김수룡)이 그렇고, 4일 시작한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극본 김수현·연출 곽영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29일 첫 방영하는 KBS2 드라마 ‘로즈마리’(극본 송지나·연출 이건준)도 이와 유사한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SBS ‘태양의 남쪽’

○ 어떤 관계?

SBS ‘태양의 남쪽’에서 성재(최민수)와 동거해온 민주(유선)는 죽음을 앞두고 성재의 친구인 연희(최명길)와 포옹하며 성재를 부탁한다. 두 여자는 한 남자(성재)와의 관계를 안 뒤 서로 더욱 돈독한 우정을 다져나간다.

성재의 아이를 임신한 민주가 연희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를 예뻐해 준만큼만 우리 아이를 아껴 달라”고 하자 연희가 말한다.

“바보, 네 자식이 곧 내 자식인데 어떻게 미워하니…. 너도 하늘나라 가서 우리 민영이 만나면… 예뻐해 줄 거지?”

SBS ‘완전한 사랑’의 영애(김희애)는 희귀병으로 얼마 못산다는 사실을 숨긴 채, 남편 시우(차인표)가 새 여자를 얻도록 유도한다.

“나 죽으면… 재혼해야겠지? 당신 친구 지나씨(이승연)와 결혼하면 되잖아.”

또 KBS 2 ‘로즈마리’의 정연(유호정)은 남편 영도(김승우)의 애인인 경수(배두나)에게 가족의 앞날을 맡기기 위해 아예 교육까지 시킨다. 정연은 위암 선고를 받는 날 경수와 사귀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추스리고 경수에게 자기 아이들을 소개시키고 집안일을 가르치면서 ‘언니’ 같은 존재가 된다.

SBS ‘완전한 사랑’

○ 어떻게 봐야 하나?

SBS ‘태양의 남쪽’ 등은 배우자의 재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추세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 남편과 두 여성이 공존하는 것도 과거 본부인과 첩의 종속관계가 아니라 가족 내에서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처럼 일부일처제라는 전통적 가족관계가 깨져가는 이 시대에 ‘새로운 가족’에 대한 모색으로도 비치고 있다. 동덕여대 윤종희 교수(가정복지학)는 “오늘날 사회는 혈연 중심의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혈연이 아닌 사람도 일원이 될 수 있는 ‘열린 가족’으로 점차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기존 드라마와 다른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분석도 나온다. 기존 드라마에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선악관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태양의 남쪽’ 등에서 여성들은 시기하지 않는다. 한 여성학자는 이에 대해 “질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갈라놓기 위해 학습시킨 것”이라며 “가부장적 질서가 약해진 요즘 여성들은 질투를 배우지 않고 자란다”고 말했다.

KBS2 ‘로즈마리’

그러나 이런 관계는 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며 결국 ‘한 남편과 두 여자의 공존’은 일시적 과도기로 일부일처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다. 배철호 SBS 외주제작팀 부국장은 “가족이 관련된 삼각관계가 이렇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죽기 때문”이라며 “이런 드라마를 계기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 허태경씨(50·서울 관악구 봉천동)는 “여성이 시한부 인생을 진단받으면 자신보다 가족의 앞날을 더 걱정하게 될 것”이라면서 “그들이 ‘엄마’와 ‘아내’의 빈 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찾는 것은 가족에 대한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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