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사투리 전쟁 '황산벌'…" '거시기' 가 뭐꼬?"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21분


코멘트
사진제공 씨네월드
사진제공 씨네월드
서기 660년 여름 황산벌,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 5000명과 김유신 장군이 지휘하는 5만 대군이 맞붙는다. 백제는 패배하고 이후 멸망의 길을 걷는다.

영화 ‘황산벌’(감독 이준익)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적 진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퓨전 역사 코미디’란 장르로 절묘하게 버무려냈다. ‘코미디’와 ‘시대극’이란 두 장르를 풀칠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투리’. 백제와 신라군이 질펀한 사투리를 썼다는 발상으로 이질적 요소를 하나로 묶었다. 사투리 중에서도 핵심 키워드는 ‘거시기’.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는 것이다.’(계백)

계백의 말에 신라군은 ‘암호 해독관’까지 나서지만 그 뜻을 풀지 못해 헤맨다. 여기에 양쪽 군대의 신경전에 등장한 각종 ‘욕 싸움 시리즈’는 웃음의 폭발력이 크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무게 잡지 않고 풀어낸 점에서 돋보인다. 1300여 년 전을 다룬 영화 속에서 ‘지금 여기’에 대한 풍자가 술술 풀려나온다. 7세기 초 ‘삼국+당나라’의 ‘4자회담’이 열렸다는 설정에 당 태종의 ‘악의 축’ 선언까지 들먹이는 것.

그렇다고 실컷 웃어볼 요량으로만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기대가 어긋날 수도 있다. 예상과 달리 박중훈(계백) 오지명(의자왕)은 직접적으로 웃음의 전달자 역할을 하진 않는다. 그들은 진지하게 연기한다. 다만 주변 상황과 인물들이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영화 전후반의 색깔이 철저히 다른 점은 일부 관객들에겐 당혹스러울 것 같다. 마치 당의정처럼 웃음 속에 처절한 비장감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부 ‘사투리 열전과 욕 대결’로 빚어낸 ‘유쾌 통쾌 상쾌’의 톤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전투의 비참함을 보여주고 ‘전쟁은 미친 짓’이란 메시지를 짚어나간다. 출전에 앞서 가족을 모두 죽인 계백이나, 어린 화랑을 희생양으로 삼은 김유신의 행동은 과연 무엇 때문에, 누굴 위해서였을까.

웃음과 반전(反戰)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인가,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은 것인가. 그 평가는 이제 관객들 몫으로 남았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