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앞바다 고려유물, 삿갓형 茶사발 미학가치 높아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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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가 대량 발굴된 전북 군산 앞바다의 ‘십이동파도’는 원처럼 둥글게 모여 있는 12개의 무인도를 가리킨다. 가장 큰 섬의 폭이 200m에 불과할 정도로 작지만 섬들이 감싸고 있는 안쪽 바다는 마치 어머니 품처럼 잔잔해 ‘안품’이라 불린다.

2일 오전 11시경 군산항 신시도에서 장자도까지 배를 타고, 다시 1시간 반 더 들어가야 닿는 이곳 안품에 국립 해양유물전시관 문환석 탐사팀장(47) 등 탐사단 6명이 도착했다. 해저 16m로 내려가 바닥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이들은 말을 잊었다.

90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려청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 짚을 깔고 접시는 접시끼리 대접은 대접끼리 포갠 뒤 나무 막대를 칸막이 삼아 가지런히 줄을 맞춰 놓았다. 그릇들 사이 충돌과 깨짐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 지푸라기, 갈대, 나무판자들도 썩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문 팀장은 “이번 조사에서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추측하던 고대 도자기 운반과 포장방법까지 실물로 확인할 수 있어 해양유물 조사 사상 획기적인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자운반선의 경우 해저에 파묻혀 아직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 선박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돼 한국 고대선박사의 연구에 있어 1급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목선(木船)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규모나 구조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

유물을 감정한 명지대 윤용이 교수는 “이 선박은 고려 때 물자유통 시스템 연구 및 한반도 전통 한선(韓船)의 발달과정을 밝히는 획기적 자료가 될 것”이라며 “청자 제작 연구는 물론 청자로 대표되는 고려시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에서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의 종류는 청자, 흑갈색 자기와 도기, 회청색 도기 등 4가지. 이 중 청자는 왕실에서 쓰던 1급품보다는 떨어지는 2, 3급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발굴된 청자 1289점 중에는 사발과 접시 등 1인용 식기세트가 될 수 있는 일괄유물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삿갓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차 사발은 미학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흙갈색 자기와 도기는 10세기에 널리 사용되다 12세기에는 청자로 완전 대체됐는데 이번에 발굴된 유물은 흑갈색 도자기가 사라져갈 무렵에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수중촬영 결과 원통형의 돌 시루도 처음 발견됐다.

윤 교수는 “청자를 제작한 장소는 왕실 청자를 생산하던 전남 강진이 아니라, 해남 진산리 가마터로 보인다”며 “고려시대에는 전국 각지에 도자기를 전문으로 만드는 자기소(瓷器所)가 있었는데 각 장소에서 생산된 자기들이 개경으로 이송돼 등급별로 적당한 계층에 분배됐다. 이번에 발견된 배는 대량 제작한 도자를 싣고 개경으로 가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화재청은 선박 발견 1km 해역을 4일 사적으로 가지정하고 본격적인 유물 발굴에 들어가는 한편 겨울이 다가오는 기후적 특성을 고려해 내년에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선체 인양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해저 유물 발굴
발굴 지역발견 시기유물
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1976년14세기경 중국 일본간 무역품. 중국 고선박 1척, 도자기 2만점, 고려청자 7점 등
충남 태안반도 1981년고려청자 500여점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지섬 1983년11, 12세기 고려청자 3만여점, 고선박 1척.
전남 진도군 벽파리 해안1992년14세기 중국 통나무배 1척
전남 목포시 달리도 해안1995년14세기 고려시대 고선박 1척
전남 무안군 도리포 해안1995년14세기 고려 상감청자 등 639점
전북 군산시 비안도2002년12, 13세기 고려청자 3172점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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