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5년 앙리 파브르 사망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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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꿀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腦)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1915년 10월 11일. ‘곤충의 시인’이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마태복음 25장40절)들의 평생 벗이었던 앙리 파브르가 별세했다. 92세의 고령이었다.

프랑스 남부 생레옹의 산간 마을에서 태어난 파브르는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쇠똥구리의 빛나는 갑옷에 매료되었고 하늘을 향해 그물을 짜는 거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곤충들의 이름을 통해 알파벳을 익혔다.

30년에 걸친 노작 ‘곤충기’는 동시대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극찬한 대로 곤충세계의 일리아드요, 오디세이였다. 깊은 감명을 받은 다윈은 서한을 보내 “내가 본능의 진화에 대해 쓰게 된다면 귀하가 기록한 사실 가운데 몇 가지를 활용하고 싶다”고 경의를 표했다.

그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예술가처럼 관찰하며, 시인처럼 표현했다. 파브르에게 삶과 연구는 다르지 않았다.

솔나방 애벌레의 공동체생활을 지켜보던 그는 묻는다. “이들은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다투기보다는 나눔으로써 자연의 풍요를 한껏 누리는 이들은 인간세계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으로 평등과 공산주의를 제안한다.”

숨을 죽이고 몸을 한껏 낮추어 ‘착하지만 단지 무게가 나가지 않을 뿐인’ 곤충들의 퍼덕임과 깜박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했던 파브르. 혹자는 생명사상과 환경운동의 정신적 뿌리를 그에게서 찾기도 한다.

그는 곤충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 소중한 곤충들아.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너희를 고문하지만 나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매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너희들을 본다.

그들은 너희를 토막 내 세포와 원형질로 내던지지만 나는 너희의 본능이 최고도로 현시(顯示)되는 모습을 관찰한다. 그들은 죽음을 연구하지만 나는 생명을 연구한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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