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세계' 특집…시인10명의 생업과 詩作 소개

  • 입력 2003년 8월 10일 17시 25분


“나는 무엇하는 사람일까요? 글을 쓰죠. 어떻게 사냐고요? 그냥 살아요.”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에서 주인공인 시인 로돌포가 옆방 여인 미미에게 자기 소개를 하며 하는 말. 예부터 시인의 시작(詩作)은 ‘생계’와 동떨어진 작업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인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있을까. 최근 발간된 계간 ‘시인세계’는 기획특집 ‘시인이 따로 가진 특별한 직업’에서 시인 열 명의 특별한 전문 직업을 살펴보고, 그들의 직업의식이 시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소개했다.

변호사인 전원책 시인은 “문학을 탄생시키는 진실은 절박한 곳에 비로소 존재한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전장, 불의와 싸우는 고독한 법정, 치열을 극하며 암과 싸우는 수술실, 가족의 허기를 위해 싸우는 노동현장에서 문학이 탄생하는 이유다”라고 말한다. 위대한 시는 일상의 유희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의 시 ‘헛간’은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죄를 지은’ 여성 피고인들을 만나기 위해 국선변호인으로 구치소에 갔던 날의 경험을 적고 있다. ‘접견실에서 내려다본 여사(女舍)에는/ 언 햇살이 성성 걸린 창살마다/ 수건이 걸려 있다/(…) 수건들이 모두 바람에 날려와 아우성이다/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눈발이 들이친다’

용접공인 최종천 시인은 노동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은유를 시의 모티브로 여긴다. “작업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은유들은 바쁜 노동을 바쁘지 않게 해준다. 일하는 틈틈이 생각할 여유를 만들어준다. 나는 기성시인들에 의해 제작되는 시들이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노동현장에서 생성되는 은유야말로 살아 있는 시다.”

건축가인 함성호 시인은 현대 건축의 자폐(自閉)화 경향을 지적하며 “어떤 예술이든 자폐의 깊은 심연에서 자신을 숙고하지 않는 예술이 있겠는가”고 묻는다. ‘을지로 지하보도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다시 만납시다, 먼 소실점에서’(비유클리드 기하학-건축사회학)

록 가수인 성기완 시인은 ‘시인은 직업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시인은, 세상의 입구에서부터 저승의 입구에까지 널려 있는 모든 원자의 운동과 생물의 피땀에 도전하는, 직업이 아닌 모든 것이다.(…) 그 어떤 직업을 가져도 시인은 떠돌이이다.”

이 밖에 농장 경영자, 양봉업자, 전문의, 노점상 등 다양한 이력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력(詩歷)과 직업의 평행관계를 때로는 긴장의 관계로, 때로는 넉넉한 조화의 관계로 소개하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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