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지휘봉대신 프라이팬 잡은 정명훈 "요리도 지휘처럼"

  • 입력 2003년 7월 23일 18시 44분


코멘트
“요리와 지휘는 비슷합니다. 정해진 재료와 시간을 배분해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이니까.”

마에스트로(명지휘자) 정명훈씨(50)는 요리를 말한다. 세계 음악계의 소문난 ‘요리광’으로 알려진 정씨는 8월에 자신의 요리 경험과 음식관(觀), 그 밖의 인생철학과 음악관 등을 담은 책 ‘요리는 지휘처럼-Dinner for 8’(가제·동아일보사)을 펴낸다.

8의 의미는 정씨가 차리는 식탁의 주인공들을 가리킨다. 그와 그의 아내, 세 명의 아들, 그리고 세 아들의 미래 반려자들이다. 식탁에 ‘여덟 식구’가 다 모였을 때가 바로 자기 인생이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상상하며 이 책을 썼다.

정명훈씨는 4월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휴양지 산 빈첸초의 파스타 전문점에서 만 하루 동안 연수를 받았다. 정씨의 매니저는 “주방장이 정씨의 솜씨가 좋다며 크게 칭찬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최근 도쿄에서 기자와 만난 정씨는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수장이자 도쿄필의 예술고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함없이 뜨거웠다.

그는 요리책 발간 소식을 전하며 “예순살까지 모든 직함을 내놓고, 그 후엔 요리를 즐기며 자유롭게 이따금 객원지휘만 한다는 것이 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흔살이 되면 새 악단을 맡아 ‘깜짝 컴백’을 할 생각도 있다”고 장난기가 깃든 표정으로 덧붙였다.

♪요리와의 인연

아마추어가 아니다. 어린 시절 미국 시애틀에서 살 때 집에서 한국음식점을 했다. 형님이 웨이터를 했고, 열살이었던 나는 주방에서 일했다. 어린 나이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척척 만들어 냈다. 요리를 빨리 하는 버릇은 그때 생겼다. 손님이 뜸할 때 피아노를 쳤다.

♬ 이탈리아 음식

이탈리아인인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아래서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있을 때 줄리니씨와 이탈리아식당에 다니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파스타 만드는 기계까지 사서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유럽으로 근거지를 옮길 때 처음 생각한 곳이 이탈리아였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이탈리아 음식 때문이었다. 프랑스 음식도 훌륭하지만 배우기 어려워 외식으로 즐기는 편이 좋다고 본다.

♬ 파스타(이탈리아 국수)

올리브유 토마토 소금만 있어도 신선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씹는 맛을 좋아해 갓 뽑아낸 것보다는 말린 파스타를 즐긴다. 국수를 삶을 때도 단단한 심이 살아 있도록 8분 이상 삶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걸 보고 ‘빳빳하게 서 있는 스파게티’라고 놀리곤 한다. 집에서 한 끼는 한국 음식, 한 끼는 이탈리아 음식을 번갈아 먹거나 한 식탁에서 같이 먹는다.

♬ 입맛

매운 것을 좋아한다. 항상 음식에 고추를 넣는다. 붉은 고추와 올리브유를 반반 섞은 고추기름도 자주 사용한다. 매운 타바스코 소스도 여행가방에 늘 들어 있다. 단, 프랑스 음식에는 매운 맛이 맞지 않는다. 또 나는 국물을 좋아해서 한국식 국이든 수프든 국물이 있는 것을 항상 같이 먹는다. 닭뼈 생선뼈 야채 등으로 각종 육수를 미리 만들어 놓는다.

♬대식가인가?

혼자 있을 때는 식사를 잘 하지 않고 대충 호텔방에서 시켜 먹는다. 집에 있으면 종일 먹을 것을 생각하고 또 종일 먹는다. 뉴욕에 있던 시절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으로 나온 닭봉 요리를 누가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45개를 먹어치워 우승을 했다. 음악가들은 보통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수면시간을 조절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