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그런 곳일까?

  • 입력 2003년 7월 18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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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그런 곳일까?(Est-ce dans le monde-l`a que nous voulons vivre?)/에바 졸리 지음 레자렌 출판사

책은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하는가 하면 한 사회를 재단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도서를 소개하며 필자가 은연중에 바라는 것도 바로 한국 독자들의 ‘프랑스 사회 엿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를 재단하는 데는 세인의 관심을 끄는 ‘잘 나가는 책’도 효과적이지만, 가끔은 반대의 경우도 사회의 이면(裏面)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지어 책이 출판되자마자 판매가 금지된, 이른바 ‘금서(禁書)’도 그 나름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해 여검사로 활동하고 있는 에바 졸리의 이 저서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1990년대 프랑스 사회의 최대 부패 스캔들인 ‘엘프 사건’을 담당한 ‘예심 판사’로서 지난 7년간(1996∼2002)의 수사 과정에서 겪었던 협박, 도청, 가택침입 등의 수사 방해 공작을 폭로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녀는 부패한 정치인과 석유업계 기업인, 수사에 소극적인 법조인들을 고발하며 점점 더 세계화돼 가는 부정부패에 대해 프랑스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책은 서점가에 배포되자마자 금서가 돼 더욱 화제에 올랐다. 현재 진행 중인 ‘엘프 사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파리지방 법원은 7월 초 열리는 심리 때까지 한시적으로 이 책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의 변론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는 말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책이 어디 있을까? 혹자의 말대로 모든 책에는 누군가를 해칠 가능성이 늘 잠복해 있다.

에바 졸리는 이 조치에 맞서 법원의 판매금지 결정이 내려진 다음날 15명의 국제 법조인 및 몇몇 시민단체 인사와 함께 소르본대에서 모임을 갖고 ‘부패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파리 선언’을 발표했다. 더 이상 권력의 핵심부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파리선언’ 참가자들은 국가 고위층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주요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계좌를 특별 관리하는 등 검은돈의 흐름을 차단하는 국제 공조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이 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만만치 않다. 정의의 수호신으로 자처하며 저자가 법과 윤리를 혼동해 기소를 유죄판결로 속단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고, 언론 매체를 이용해 ‘엘프 사건’의 피고인들을 여론 재판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에 손길이 가는 까닭은 그녀 말대로 그처럼 ‘부패한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에바 졸리는 현재 프랑스와 노르웨이 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중 한 사람이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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