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일호/미술관은 '겉보다 속'

  • 입력 2003년 7월 4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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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하나 짓는 데 돈이 얼마나 듭니까?”, “직원은 몇 명 정도가 필요할까요?”, “미술관을 지어 관광과 연계시켜 활용할 방안은 없나요?”

얼마 전 필자가 대전시립미술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미술관을 짓고 싶어 하는 분들이 던졌던 질문들이다. 그 밖에도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대개 미술관의 외형과 형식, 가시적 효과만을 염두에 둔 것이 많았다. 미술관을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문화시설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번듯한 건물’ 무슨 의미 있을까 ▼

그 질문들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미술관을 하드웨어로 생각하지 말고 먼저 소프트웨어로 인식하라는 것이었다. 미술관 건물을 짓는 데 수백억원이 필요하다는 생각부터 하지 말고, 우리에게 필요한 미술관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격 규정과 운영을 위한 아이디어가 우선돼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미술관과의 차별화 전략을 먼저 수립하고, 일반인들이 높게만 생각하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던 것이다.

미술관을 새로 지을 때는 운영 방향에 따른 작품 수집과 전시계획 수립이 중요하다. 전시를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그리고 미술관을 편안한 문화적 휴식공간으로 여길 수 있는 시설과 장치들을 위한 아이디어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미술관 건물 신축은 그 성격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할 그 이후의 문제다. 아무리 번듯한 집을 지어본들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토요일 오후 3시 미술관 로비 바닥에 앉아 간이음악회나 무용공연을 보고 전시장도 둘러보며,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는 여유를 갖게 하는 미술관이라면 어떨까. 관심은 있지만 미술작품 앞에 서면 왠지 주눅 드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많은 안내원이나 장치들이 준비된 미술관이면 또 어떨까. 그런 점에서는 몇 명의 직원이 필요한가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전문성을 갖춘 관장이나 학예실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작품관리원이 아닌 안내원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며, 전시가 주를 이루되 복합문화공간의 기능도 갖추도록 하는 공간 안배가 중요할 것이다.

관광과 관련해서는 미술관도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방법은 미술관만의 특성화를 이루고, 운영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수준의 관광을 생각하느냐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뉴욕의 미술관들과 비슷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생각은 접어두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볼거리와 배울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미술관으로 몰릴 것이다.

문화와 예술의 생명은 다양성에 있다. 사람들이 직접 겪지 못한 다양한 체험을 예술과 문화를 통해 얻도록 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지평을 넓혀나갈 때, 문화의 참된 가치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시내에 있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그 성격을 조금씩만 달리한다면 우리 문화는 그 다양함을 통해 한층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곳은 공연과 연계된 미디어아트, 어떤 곳은 공예와 실내 분위기, 또 어떤 곳은 추상화 교육 등으로 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지역이나 도시마다 서로 다른 문화전통이 묻어나는 미술관들이 갖춰진다면 그 다양한 볼거리와 배울 거리의 연출을 통해 관광이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편안함 줄 프로그램 개발을 ▼

안타깝게도 미술관을 짓고 싶어 했던 그분들의 이후 소식은 지금까지도 들은 바 없다. 이분들은 혹 아직도 미술관이 소프트웨어라는 생각보다 그래도 번듯한 건물 하나 지어야 ‘업적’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미술관보다는 사회복지시설에 투자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조형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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