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정원' '마지막 선물' 공동번역 이해인수녀와 이진씨

입력 2003-07-03 18:46수정 2009-09-2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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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리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너희들이 태어났지. 귀국길 공항에서 너랑 향이, 쌍둥이 자매가 찡얼찡얼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고모, 우리 어릴 때 뒷산에 단풍잎 주우러 올라갔던 거 생각나요? 나는 벌레 안 먹은 예쁜 잎만 골랐어. 그런데 고모가 ‘완벽한 것보다 벌레가 조금 갉아 먹은 게 더 예쁘지 않니?’ 그러는 거야. 그때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했지. 그래서 고모가 시를 쓸 수 있구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고모와 조카딸 사이인 이해인 수녀(58)와 이진씨(33·전문번역가)가 더듬어가는 기억에는 늘 유쾌한 웃음이 뒤따랐다.

“조카딸과 함께 작업하니까 일하는 즐거움을 새롭게 느낀다”는 이해인 수녀(오른쪽). 고모와 조카딸의 웃는 모습이 닮았다. -김동주기자

최근 이들은 아일랜드의 케네디 수녀의 명상록 ‘영혼의 정원’(열림원)과 짐 레니한 신부가 남긴 메시지인 ‘마지막 선물’(보보스)을 함께 번역했다. 둘의 공동작업은 이진씨가 초역을 하면 고모가 원문과 대조하면서 운율을 다듬고 종교적인 용어를 적절하게 해석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번역은 창작에 버금가는 일인 것 같아요. 원문을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읽는 맛이 안 나고, 예쁜 문장을 만들려다 보면 원작의 뉘앙스와 달라지고. 창의성과 정직 사이에서 갈등하게 돼.”(조카딸)

“번역이 주는 특별한 묘미가 있지. 함께 번역한 책들이 너한테 격려가 됐으면 좋겠다. 나야 생활이 단순하지만 넌 아이도 돌보고, 시댁에도 가야 하는데 이렇게 일 해내는 것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모)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해인 수녀가 번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94년 마더 테레사를 만나면서부터. 90년대 중반 마더 테레사가 쓴 ‘따뜻한 손길’을 처음 번역 소개한 이후, 테레사 수녀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우리는 아무도 혼자가 아닙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해인 수녀는 “번역할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책보다는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책에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부산의 수녀원에서 지내는 이해인 수녀는 겸사겸사 들른 서울 오빠집에서 이진씨 자매가 고등학교 시절에 쓴 글이 실린 문집을 찾았다며 활짝 웃었다. 책장을 훑어보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

“그 문집, 수녀원에 가져가실 거죠? 언니랑 나랑 고모네 수녀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웃음) 우리 사진이며 옛날에 고모한테 보냈던 편지와 일기를 다 보관하고 계시잖아요.” (조카딸)

“어느 신부님은 조카들한테 잘해주지 말라고도 하시더라. 예뻐하는 것만큼 섭섭함도 감당해야 한다고. 그래도 첫 조카였던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아니? 너희 태어났을 때 내가 ‘축시’도 썼다.”(고모)

“우리는 어렸을 때 항상 고모가 선물한 책을 읽으며 자랐잖아. 고모한테는 받은 것에 비해 우리가 하는 것이 없다는 마음이 늘 있어서 미안해요. 고모는 조카들한테 절대적인 존재예요.”(조카딸)

“너희들 결혼하니까 멀어지는구나 싶어서 울적해지기도 하더라만 그래도 난 너희들의 영원한 팬이라는 거 알지?”(고모)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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