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메디컬]"폐경기 호르몬요법 효과 의문" 美시끌

  • 입력 2003년 3월 23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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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기 여성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호르몬 요법이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방정부의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미국 내에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여성 건강 이니셔티브’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연구에 따르면 폐경기 여성들은 호르몬 약을 먹었다고 해도 원기를 회복하고 성(性)적 만족이 증대되거나 숙면을 이룰 수 없었다. 또 우울 증세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물론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기억력도 좋아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1만6608명의 여성을 나눠 한 그룹에는 가짜 약을, 또 한 그룹에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복합제제인 웨스사의 호르몬 약 ‘프렘프로’를 복용케 했다. 실험 결과 호르몬 약을 복용한 여성들이 얼굴이 붉어지는 ‘안면홍조증’과 자면서 많은 땀을 흘리는 ‘야간 다한증’ 증세는 다소 줄었지만 삶의 질을 결정하는 다른 분야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연방정부에 이 연구를 하도록 로비를 했던 국립여성건강네트워크 이사인 신디 피어슨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실제 약효가 없었는데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해온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호르몬 약은 수백만명이 복용할 정도로 폐경기 여성에게 가장 널리 처방되던 방법이었다. 많은 사람이 호르몬 약이 폐경기 질환을 완화하고 성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등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약간의 부작용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이런 믿음에 의혹을 던졌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그들은 연구 결과가 너무 중요하고 엄청나기 때문에 5월 8일 발행 예정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서 발표하기로 했던 일정을 앞당겨 17일 미리 공개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연구의 기억력 테스트가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세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이번 연구가 대부분의 여성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연구 책임자 바버라 앨빙 박사는 “호르몬 약을 먹는 여성들은 약이 삶의 질을 개선해 준다는 생각 때문에 약을 거부할 수 없다”며 “그러나 삶의 질을 논한다면 호르몬 약을 복용하든, 그렇지 않든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게 연구의 결론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웨스사는 이번 연구가 여성들이 호르몬을 사용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호르몬 약을 복용하는 여성 대부분이 폐경기 질환을 심하게 앓고 있지 않으며 삶의 질 또한 평균 이상이라는 것. 이 회사의 대변인 더그 피트커스는 “이번 연구결과는 신중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렘프로를 복용한 여성들은 수면장애, 신체 기능, 통증 등 3개 분야에서 약간의 개선을 보였다.

그러나 연구보고서 작성을 지휘한 제니퍼 헤이즈 박사는 “이는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이며 임상적으로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호르몬 요법을 택했다 하더라도 수면장애는 2%, 신체 기능은 0.8%, 통증은 1.9% 정도가 개선됐을 뿐이라는 것.

헤이즈 박사는 실험 참가자의 대부분이 폐경기를 이미 오래 전에 맞았기 때문에 실험대상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대론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이즈 박사는 “젊은 여성에 타깃을 맞춰도 결과에 큰 차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안면홍조증과 관련해 실험 전 이 질환을 호소했던 여성의 77%가 증세가 호전됐지만 가짜 약을 복용한 사람들도 52%나 증세가 완화됐다는 것.

이제 이 연구결과를 믿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하버드 뱅가드 의학연합 산부인과 마르시에 리처드슨 박사는 “이번 결과를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환자인 루신다 도란은 “한때 약 복용을 중단하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그는 “나는 일종의 거래를 하고 있으며 약을 복용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연구에 참여한 웨인주립대 산부인과 수전 헨드릭스 박사는 “이번 결과에 충격을 받았고 나 역시 결과를 믿는다”며 “이번 연구결과가 호르몬의 위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르몬 약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한 환자에게 약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5년간 호르몬 약을 먹으면 100명 중 1명 꼴로 심장마비와 뇌중풍, 유방암 등에 걸릴 수 있다”며 “그렇지만 유일한 이점은 폐경기 질환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환자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내년에 심장마비 등의 질병으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느끼겠는가. 그때도 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괜찮으며 약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겠는가.”

그 환자는 깜짝 놀라며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이제 호르몬 약에서 발을 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http://www.nytimes.com/2003/03/18/health/18HORM.html)

▼폐경기 전후 나타나는 증세 ▼

1.얼굴이 자주 붉어진다 (안면홍조증)

2.잠을 잘 때 땀이 많이 난다 (야간 다한증)

3.기억력 감퇴, 자신감 상실, 우울증에 시달린다 (심리불안)

4.신경과민 등으로 밤에 잠을 잘 못잔다 (성기능 장애)

5.성욕감퇴 또는 성행위 때 성교통이 생긴다 (성기능 장애)

6.뇌중풍, 골다공증, 치매, 심장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정리=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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