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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3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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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곡소리 듣는 것이 몇 년만인지 모르겠어요.”
“7남매가 함께 곡을 하니 빈소가 정말 볼 만하네요.”
“이 집안이 본래 안동 출신이라지요.”
2일 저녁 어느 중견 언론인의 부친상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의 한 병원 영안실에서는 ‘생경하게 들리는’ 곡소리를 들으며 조문객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요즘 서울의 상가(喪家)에서는 곡소리가 끊긴 지 이미 오래다. 워낙 의술이 발달한 시대라 대체로 가족들이 이미 병상 곁에서 슬픔을 함께 나눠 온 터에 빈소에서까지 굳이 곡을 할 필요는 없을 듯도 하다. 이미 달라진 세태를 따르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빈소에서 슬픔과 안타까움을 상징하는 ‘곡’은 조문객들의 마음을 절로 경건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곡을 하는 것이 보통 정성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이미 조선시대에도 곡을 안 하는 풍토는 퍼져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 유학자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초학자들을 위한 저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이미 “지금 사람들은 예법을 알지 못해서 조문하러 손님이 와도 엎드려만 있다”고 지적하며 “상제들은 조객을 향해 두 번 절하고 곡을 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곡을 하다가 지치면 노복을 시켜서라도 곡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곡쟁이’라는 직업적 곡소리꾼도 있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곡소리 속에서 새삼 고인의 인품과 자녀들의 효심이 돋보였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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