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낮엔 빈소로 밤엔 무대로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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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부상을 당한 연극배우 박정자씨(60)는 발인인 7일 장지인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곧바로 대학로로 갔다.

상중(喪中)인 박씨가 찾아간 곳은 정미소 소극장. 이틀 후인 9일부터 막을 올리는 연극 ‘19 그리고 80’의 연습을 위해서였다.

박씨는 3일장을 치르는 내내 아침과 낮에는 빈소를 지켰지만, 저녁에는 소극장 연습실을 지켰다. 6일 저녁 박씨를 만나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 때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80세 할머니 ‘모드’로 분장한 그의 흰머리 위로 상중임을 나타내는 흰 머리핀이 눈에 띄었다.

“공연은 관객들과의 약속인 걸요. 더구나 지금은 공연이 코앞이라 조명, 음향을 맞춰봐야 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빠질 수가 없어요.”

무대 준비를 위해 잠시 연습을 쉬는 동안 그는 7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5년 연극 ‘테레사의 꿈’ 공연 시작 30분 전에 시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꽉 찬 객석을 본 그는 무대에 섰다. 공연을 마친 뒤 커튼콜을 받고 그는 비로소 관객들에게 부음을 알렸고, 관객들은 더 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나흘 동안 그는 공연을 중단했다.

그가 겪었던 심적인 고통을 아는 지인들은 빈소를 찾아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연극에 지장이 없도록 공연 며칠 전에 미리 떠나신 것 같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수척한 얼굴의 박씨도 “다들 그래. 시아버님께서 날 봐주셨다고…” 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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