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여성작가 110명 '등단이야기' 출간

  • 입력 2002년 11월 26일 18시 05분


박완서/ 한말숙/ 유안진/ 김후란 (왼쪽부터)
박완서/ 한말숙/ 유안진/ 김후란 (왼쪽부터)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신춘문예를 지망하는 문학도들은 ‘열병’을 앓는다. 등단을 꿈꾸는 수많은 문청들에게 한국여성문학인회에 소속된 110여명의 작가들이 문학이라는 길과 자신의 등단에 얽힌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들이 최근 펴낸 ‘나의 등단 이야기’(솔·학)에서다.

유안진은 박목월 선생을 ‘어질고 순후한 모국어의 마술사’로 기억한다. 그는 1965년 ‘현대문학’에 박목월로부터 첫 추천을 받았다.

시에 아주 엄격했던 ‘도사(道士)’ 박목월은 그가 습작원고를 가져가면 서울 원효로 4가 로터리에 있는 삼정다방으로 나오곤 했다. 죄인처럼 내놓은 원고를 보고 단호한 표정에 엄격한 어조로 하시는 말씀.

“유군! 나는 시 몇 편 잘 썼다고 시인을 맨들어 줄 순 없네. 시 몇 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했다가, 사는 게 힘들어지고 바빠서 시 안 쓰면 추천한 나는 뭐가 되노?”

1970년 마흔의 나이로 등단한 박완서. 그 시절 왜 그렇게 자신이 만만했던지 심사위원이 끝까지 읽어만 준다면 당선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심사위원인지도 모르면서 몇 장 안 읽고 원고를 던져 버릴까봐 속을 끓였던 것은 워낙 졸필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또박또박 쓰기는 했으나 그 후 다작하는 작가가 되면서 자신의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그를 구제해 준 것은 워드프로세서였다고 고백한다.

1956년 늦봄, 한말숙은 한 후배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다. 스승 김동리 선생이 “한말숙은 쓰면 잘 쓸텐데, 놀러만 다니는 것 같어”라고 했다는 것. 가야금과 한국 무용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그는, 그해 여름 어느 음악다방에서 심포니를 듣다가 문득 소설 한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밤사이에 단편 ‘별빛 속의 계절’을 써서 김 선생에게 우송했고,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선생은 필명을 쓰라고 권유했지만, 작가로 명성을 날리기보다 평범한 일생이 낫다고 생각한 그는 본명을 고수했다.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김형덕에게 당시 문화부장인 시인 신석초는 “시를 쓰려면 정식으로 추천을 거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김형덕이 골라 온 시를 읽어본 신석초는 며칠 후 ‘김후란(金后蘭)’이라는 이름을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허난설헌 이후 제대로 손꼽히는 시인이 되라는 뜻이었던 것. 후에 ‘김후란(金后蘭)’으로 한자를 바꿨다. 이 밖에 노향림 허영자 홍윤숙 이규희 전숙희 등의 글이 수록됐다.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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