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誹謗(비방)

  • 입력 2002년 9월 8일 17시 21분


誹 謗(비방)

誹-그러다 할 비謗-나무랄 방 讓-양보할 양

背-등질 배 誤-그릇될 오 諫-간할 간

誹는 말(言)로 남의 허물(非)을 탓하는 것이며 謗 역시 말(言)로 옆(旁)에서 수근거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誹謗이란 면전에서 탓하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서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사람들이 이상적인 聖君(성군)으로 꼽는 인물에 堯(요)와 舜(순)이 있다. 물론 전설 상의 인물로 그 실존여부는 미지수지만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중국의 역사에서 그들을 능가할 만한 聖君은 없었다. 두 임금의 가장 큰 특징은 훌륭한 德을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德治(덕치)가 그것이다. 생활도 무척 검소해 天子인 堯를 보고는 다들 ‘문지기보다도 못한 자리’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백성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헐벗고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모두가 내 탓’으로 돌리고는 마음 아파했다. 이렇게 백성을 친자식처럼 돌보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의 재위 100년 간은 太平聖代(태평성대)를 이루었다. 누구나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자가 없었고 밤에도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

그는 天子의 자리를 舜에게 물려주었다. 舜은 본디 孝心(효심)으로 천하에 이름이 자자했는데 이 때문에 堯에 의해 帝位(제위)를 물려받게 된다. 그 역시 堯에 못지 않게 훌륭한 정치를 했으며 아들 商均(상균)이 있었지만 無能(무능)하다는 이유로 治水(치수)에 공이 컸던 禹(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죽었다.

이렇게 해 ‘禪讓’(선양)의 전통이 세워지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堯舜의 시대를 大同世界(대동세계)였다고 칭송했다.

堯가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輿論(여론)의 向背(향배)였다. 혹 자기도 모르는 獨斷(독단)이나 過誤(과오)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다 정확하게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특이한 구상을 했다. 곧 궁전 입구에 커다란 북을 달았다. 북은 ‘敢諫(감간)의 북’이라고 했으며 누구든지 정치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와서 치게 했다. 또 그 옆에는 기둥을 하나 세우고는 ‘誹謗의 나무’라고 했다. 누구든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무 곁에 서서 탄원을 하도록 했다.

과연 그의 구상은 적중해 수많은 백성이 ‘敢諫의 북’을 울렸고 ‘誹謗의 나무‘ 옆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리하여 그는 한층 더 정확한 民意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바고 훌륭한 정치로 이어졌다. 물론 誹謗도 사라지고 말았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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