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예술가로 태어나 요리사로 살아가다

  • 입력 2002년 8월 29일 16시 06분


《띠동갑 부부 오정미(41)와 요나구니 스스무(53)는 퓨전 요리 전문가다. 서양식 재료를 한식 조리법으로 풀어내거나 한식 재료를 서양요리 레서피로 만들어낸다.

연어를 된장에 절이고 과일 샐러드 위에 고추장을 입힌 대하를 얹는 식이다. 요리만 퓨전이 아니다.

‘예술가로 태어나 요리사로 살아간다’는 그들의 표현대로 인생의 절반은 예술에, 나머지 절반은 요리에 걸쳐 있다.

지금은 요리로 예술을 하는 ‘푸드 아티스트’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결혼도 ‘퓨전’이라고 해야 할까.》

▼미술학도 도예가로 뉴욕서 만나▼

아내는 홍차, 남편은 녹차가 아침 식사다. 요리가 업(業)이다보니 집에서는 밥을 해먹지 않는다. 출근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15평 규모의 작업실로 한다. 올해 초 문을 연 작업실의 정식 명칭은 ‘오정미& 스스무 요나구니 푸드아트 인스티튜트’. 요리를 소재로 예술 작품을 기획하거나 요리 전문지에 실릴 요리 사진을 찍고, 요리 및 푸드 스타일링을 강의하고 레스토랑 컨설팅, 출장 요리 준비 등을 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우리처럼 24시간을 붙어 사는 사람도 없을걸요.”

진달래 고춧가루 간장을 재료로 사용한 미술 전시회를 기획할 때나 월드컵 D-100일을 기념해 서울 시청앞에서 2002개의 떡보자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도 함께였다. TV 방송의 드라마나 광고의 요리 자문도 공동 작업. 화랑이나 명품 브랜드 회사에서 출장 요리 주문을 받으면 둘이서 6∼7시간 들여 300명분의 뷔페요리를 뚝딱 만들어낸다. 퓨전 요리책을 펴낼 때도 저자란에는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가 있다.

심지어는 요리 강의도 함께 한다. 수강생들은 ‘오선생 레서피’와 ‘요나구니 선생 레서피’를 노트에 따로 적는다. 오믈렛 강의가 있는 날에는 오씨가 먼저 달걀에 소금 후추 올리브유를 넣고 충분히 저어 보이고 요나구니씨는 달걀에 올리브유 대신 버터를 넣고 조금만 젓는 식이다. 이탈리아식 가지요리인 카포나타의 경우 오씨는 양파와 마늘을 먼저 넣고 볶다가 가지와 토마토 건포도 등을 차례로 넣어 볶는다. 요나구니씨는 가지 따로 양파 따로 볶은 뒤 나중에 합친다. 수강생들은 부부가 지도하는 대로 만든 뒤 “오 선생님 것이 더 맛있어요” “스스무 선생님 것이 더 좋은데요”하고 평가한다.

프로의세계에서‘투톱(Two-Top)’ 시스템이 가능이나 한 것일까.

“물론 의견이 다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땐 싸우지 않고 디스커션하면 됩니다. 분명한 건 두 머리가 한 머리보다 낫다는 거지요.”(요나구니씨)

오씨는 경기여고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85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술학도인 오씨가 뜬금없이 요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유학 생활로 수척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모르면 비싼 것을 골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수업료를 기준으로 골라 등록한 곳이 ‘프랑스 요리학교(The French Culinary Institute)’.

미국 전역에서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입학생의 절반 가량만이 수료에 성공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요리는 처음인 오씨는 성실성과 미적 감각으로 버텼다. 닭요리를 배운 날이면 닭 네 마리를 사와 오전 2, 3시까지 이리 쳐보고 저리 토막내 보았다. 디저트 하나를 내놓더라도 미술학도인 오씨의 접시는 유난히 화려했다. 우연찮게 발을 들여놓은 요리 학교 경력이 랑콤, 퍼스트 보스턴, 에섹스 하우스 니코 호텔 요리사 생활로 이어졌다.

▼먹기 위해, 살기 위해 시작한 요리▼

오씨가 ‘먹기 위해’ 요리를 배웠다면 남편 요나구니씨는 ‘살기 위해’ 요리를 배웠다. 요나구니씨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탄탄한 이동통신 회사를 경영하는 집안의 5형제중 맏이. 오키나와의 류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교토와 오키나와 소재 도자기제조소(pottery)에서 도자기를 공부했다. “어떻게 하면 작은 섬을 떠나 넓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찾은 해결책이 요리였다. 도쿄 세계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의 사보이 호텔 코르동블루 과정을 마친 뒤 같은 호텔의 소스 담당 요리사로 출발했다. 그로스버너 하우스 호텔, 뉴욕의 로렌트와 프라빈스 등 요나구니씨의 예상대로 요리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요리를 할 줄 알면 어디를 가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요. 게다가 요리사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2개월, 봄에 2개월 정도 일하면 1년 내내 도자기를 굽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요.”

부부는 틈날 때마다 미국 뉴욕을 찾는다. 8월초 20여일간 휴가를 떠난 곳도 뉴욕이었다. 뉴욕에 가면 요리 분야의 세계적인 최신 흐름을 모두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은 오씨와 요나구니씨가 만나 사랑을 키운 곳이다. 둘은 맨해튼의 그리니치 하우스 포터리에서 처음 만났다. 요나구니씨는 88년부터 이곳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었고 오씨는 91년 ‘밀가루 반죽만 하다보니 흙을 만지고 싶어져’ 이곳을 찾았다. 둘은 포터리에서 흙을 주무르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뉴욕은 부부가 퓨전 요리를 처음 시도한 곳이기도 하다. 1995년 맨해튼 소호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 ‘Eat & Drink’의 공동 주방장으로 일하며 한식 일식과 프랑스 요리를 결합한 새로운 퓨전 요리를 선보였다. 처음엔 둘이서 하도 싸워 20명의 요리사들이 “공동 주방장의 지시 사항이 달라서 미치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Eat & Drink’의 퓨전 요리도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꿀에 절인 돼지 갈비와 빈대떡, 쇠고기와 배를 켜켜이 쌓아 올린 육회, 우설과 쇠고기에 채소를 넣어 만든 편육, 백김치 말이와 안심구이, 일식 된장으로 볶은 가재를 넣은 라비올리, 베이컨으로 옷을 입힌 아귀와 고추장 배추 볶음…. 미술을 전공하고 서양요리를 배운 내공으로 만들어낸 퓨전 요리 덕분에 레스토랑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두 사람은 99년 결혼했다. 2001년에는 결혼 이전부터 강의 차 자주 찾던 한국에 아예 연구소를 내기로 하고 주 생활공간을 뉴욕에서 서울로 옮겼다. 부부의 요리철학은 어떻게 퓨전될까.

▼퓨전커플의 퓨전요리 퓨전인생▼

“생물학을 한 남편은 인공적인 색채만 알고 있던 내게 자연이 준 색을 가르쳐 주었다. 같은 나뭇잎이라도 햇볕을 많이 받는 쪽과 덜 받는 쪽의 초록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오씨)

“아내는 조소를 한 사람이다. 아내를 통해 선과 면 구조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푸드 스타일링에 많은 도움이 된다.”(요나구니씨)

오씨와 요나구니씨는 더 이상 도자기를 굽지 않는다. 밀가루 반죽이 더 좋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요. 모든 생각을 담아 반죽하고 부풀어오르면 또 주무르고…. 무엇보다 밀가루 반죽에서는 맛과 좋은 향이 나잖아요?”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