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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7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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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삐끼는 요즘 신세대들이 적십자 혈액원 소속의 헌혈권장요원을 부르는 비속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수백 번씩 “헌혈하세요”를 외치는 헌혈권장요원들은 이렇게 무안 당하기 십상이다.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던 5일 오전 9시반경 서울 중구 명동 입구. 헌혈버스 한 대가 와 섰다.
경력 5년의 베테랑 주부 헌혈권장요원 이현숙(李賢淑·48)씨가 버스에서 내려 “헌혈하세요”를 계속 외치지만 사람들은 못들은 척 외면한다. 이씨는 7년 전 수혈이 필요한 수술을 받고 헌혈의 중요성을 깨달아 권장요원이 됐다.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 같아 허무할 때가 많아요. 어떤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병원에 누워 수혈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생각하고 다시 힘을 냅니다. 가끔 ‘더운데 수고하신다’며 선뜻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하지요.”
오전 내내 헌혈을 한 사람은 고작 9명. 방학으로 단체 헌혈이 줄어드는 7, 8월을 맞아 헌혈자를 모으기 위해 영화표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곁들인 덕분에 평소엔 오전에 수십 명이 참여하곤 했는데 오늘은 비 때문인지 참여자가 턱없이 적었다.
그러나 오후 들면서 헌혈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버스 앞문에 줄이 생기고 버스 옆에는 신청서를 작성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전남에서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서울을 찾은 강은철군(17·고교생)은 “예전부터 헌혈증이 갖고 싶었는데 왠지 쑥스러워 3번이나 앞을 그냥 지나치다 용기를 내 헌혈했어요”라며 자랑스럽게 헌혈증을 내보였다.
명동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방원규씨(46)는 “1년에 서너번은 헌혈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헌혈을 하고 나면 뿌듯합니다”라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 이씨는 마지막 정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평상시엔 오후 5시까지만 일을 하지만 여름철에는 모자라는 헌혈량을 채우기 위해 2시간 정도 더 일을 한다. 이날 하루 헌혈자는 118명.
이씨는 “오전엔 부진했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때와 비교해 그렇게 적은 수는 아니에요”라며 흐뭇해했다.
헌혈은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만 16세부터 64세까지의 사람만 헌혈할 수 있다. 또 45㎏ 이하의 여성이나 50㎏ 이하의 남성은 헌혈할 수 없다. 혈액검사에서 빈혈기가 발견되거나 혈압에 문제가 있어도 하지 못한다.
적십자 혈액원에서는 ‘혐오감을 준다’는 여론이 높아 98년 3월부터 9개월여간 헌혈권장요원을 없앴던 적이 있다. 이 결과 헌혈량이 급감해 서울의 경우 이전보다 헌혈량이 50%나 줄었다. 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만 다시 헌혈권장요원 제도를 되살렸다.
전국에서 하루에 헌혈하는 사람은 평균 7000여명. 그러나 여름철 비수기에는 헌혈자가 적어 영화표를 주는 등의 이벤트를 곁들이지 않는다면 헌혈량이 수요를 못 따라 간다고 적십자 혈액원측은 밝혔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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