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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20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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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를 지나고 계십니다”
블래터 회장이 탄 비행기가 이날 오전 5시경 인천공항에 착륙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신라호텔 1층 로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직 지배인은 모든 것을 최종 체크해 둔 상태였다. 그의 룸 온도 체크부터 환영 꽃다발까지. 66세인 블래터 회장은 이전에도 이 호텔에 묵곤 했다. 그의 수석비서는 그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23일 새벽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22일 호텔측에 알려왔다.
블래터 회장이 인천공항을 출발하자 의전담당 직원이 그의 동선(動線)을 파악해 수시로 보고했다. “올림픽대로로 접어드셨습니다.” “한남대교를 지나고 계십니다.” “장충동 국립극장 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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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래터 회장은 호텔 사장의 영접을 받으며 붉은 카펫을 밟고 올라가 객실에 들어섰다. 응접실의 사이드 테이블에는 꽃집 ‘석란’에서 활짝 핀 꽃들만 골라 만든 꽃다발과 캐비아(철갑상어알), 차가운 와인 쿨러에 담긴 프랑스산 샴페인 돔 페리뇽이 그를 맞았다. 호텔이 마련한 선물이었다. 호텔측이 파악해 둔 월드컵 VIP의 개성 리스트에 블래터 회장은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단 한가지, 캐비아를 좋아한다”고 나와 있었다.
블래터 회장이 꽃들을 바라보는 동안 개인 경호원 월터 개그가 룸을 빠르게 확인했다. 3면에 둘러쳐진 유리 벽은 모두 방탄 필름이 쳐 있었다. 3월까지 보수 끝에 프레지덴셜 스위트(PS)룸뿐만 아니라 신라스위트 룸도 ‘국빈용’으로 개조해 23층 헬기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비상구가 설치됐다. 화장실에는 당직실과 경호원 방으로 연결되는 긴급 벨이 설치돼 있다. 빡빡한 일정에 시달릴 블래터 회장이 피로를 풀도록 물살이 기둥처럼 솟구쳐 어깨와 허리를 두들겨주는 자쿠지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핀란드식 사우나와 샤워대도 욕탕 내에 하나의 부스에 통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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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래터 회장이 우유 토스트 달걀로 이뤄진 아메리칸 스타일의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턱시도를 입은 전담 지배인이 온장고 역할을 하는 핫박스에 음식을 담아와 서빙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그릇은 차이나 웨어의 최고급이라 불리는 프랑스산 ‘베르나르도’. 접시 전체가 담백한 금빛으로 은은하면서도 찬란한 느낌을 준다. 이때 지배인이 고객을 부르는 호칭은 “서(Sir)”. 최고 중의 최고라는 ‘팁 탑(Tip Top)’ 서비스가 진행된 것이다.
휴식을 끝낸 블래터 회장이 오찬장을 향해 객실을 나서자 1층 로비의 벨 데스크들이 회전문과 회전문 사이의 일(一)자 문을 조용히 열었다. VIP는 회전문을 사용하지 않는다. 경호상 지체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 수화기 들면 TV 소리가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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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래터 회장은 5월2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71% 지지로 재선됐다. 기분이 고조된 그는 FIFA 깃발을 양복에 꽂은 채로 악수를 나눴다. 그는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축하 파티의 주빈이 되었다가 신라호텔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도 그는 축하 전화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가 전화를 받으면 TV 소리가 저절로 줄어들게 돼 있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으면 TV 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호텔의 TV 볼륨 자동 조절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는 30일 오전1시경 FIFA 집행위원들만을 위한 축하 파티에 참석하러 호텔 내의 FIFA 라운지로 내려갔다. 라운지에는 수십 송이의 나리꽃에 둘러싸인 FIFA 조형물, 당선 축하 글귀가 쓰인 케이크와과 지구가 조형된 얼음 조각, 샴페인 돈 루이나가 놓여 있었다.
축하 파티에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에 능통한 호텔 서비스드림팀원 10명이 나와 ‘눈 높이’ 서비스를 했다. 중년 이상인 집행위원들의 시선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무릎을 ‘접어’ 주문을 받았다.
이날 나온 식음료는 FIFA 후원사들을 철저하게 감안한 것이었다. 코카콜라의 미네랄 워터 ‘순수’와 버드와이저 등이 그런 것이었다. 라운지의 TV는 일본 JVC 제품이었다.
라운지 자체는 한국식 정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송림이 비치는 후정(後庭)이 그랬다. 후정 반대편인 라운지 입구에는 물레방아와 거북 석조물이 마련된 한국식 소형 정원이 미니어처처럼 마련돼 있었다. 근처에는 십이지신상 등 한국식 문양을 탁본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호텔측은 VIP들에게 국제 체인 호텔이 아니라 한국 명문 호텔이라는 것을 조심스레 알리고 싶어 했다.
● 빈 방도 턱시도 차림으로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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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은 특1급 호텔마다 있는 프레지덴셜 스위트(110평·하루 이용료+봉사료+세금〓847만원) 외에도 국빈급 고객이 2인 이상 묵을 경우에 대비해 신라 스위트를 만들었고 방 크기만 다를 뿐 서비스 내용은 똑같다. 블래터 회장 내한 당시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사용 중이었다. 그 뒤 렌나르트 요한손 FIFA 부회장이 이 방을 쓰고 있다.
신라 스위트의 공간은 출입문에서 쭉 뻗어나온 중앙 통로를 사이에 두고 크게 동서로 나뉘어져 있다. 국립극장과 남산이 보이는 서편에는 출입문 쪽에서부터 수행원실-식당-응접실-집무실이, 장충동 주택가가 보이는 동편에는 욕실-드레스룸-침실이 자리잡고 있다.
실내는 천장까지는 닿지 않는 월넛 빛깔의 목조 장식벽으로 방들을 구획지어놓았을 뿐 문이 없다. 탁 트인 느낌을 주면서 보안 검색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아틀리에 오뒤가 강한 색조감이 두드러지는 프랑스풍 인테리어 디자인과 소재 지정을 맡았다. 마루와 붙박이장 등은 미국 브루스 사 우드를 들여와 인테리어사 희훈이 조성했다. 동편 창은 전동(電動) 블라인드(한국 한스)를, 서편 창에는 밝은 빛깔의 로만셰이드(희훈)를 장식했다. 연보랏빛 소파와 세련된 느낌의 가구 침대 서가 식탁은 지오 인터내셔널이 만들었다. 침대에는 낮시간 동안 시트 위를 장식하는 스프레드(희훈)를 2겹으로 놓았다. 식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식탁에는 린넨 러너와 백자들로 장식해두었고, 식탁 의자마다 금빛 장식 술을 매달았다. 서미화랑을 통해 오래된 기와, 자개장, 흙으로 빚은 살구빛 접시, 옛날 다리미와 나막신, 문갑 화병을 들여와 장식장 등에 배치했다. 드레스룸의 옷장에는 고급 의상을 걸어놓도록 특별히 실크로 감싼 옷걸이들이 들어 있다.
조명의 경우 식탁 위의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아틀리에 오뒤가 지정한 것을 썼다. 스위치를 켜면 서서히 불이 들어오게 돼 있다. 침상에서는 리모컨으로 천장의 할로겐등(燈)을 조절할 수 있다. 할로겐등은 햇볕과 흡사한 빛을 낸다. 곳곳에 미국 새프만의 갓등을 놓아 부분 조명이 가능하다.
이밖에 오디오 세트는 뱅&올룹슨, 냉장고는 지펠, 비누 샴푸 린스 등은 불가리 제품을 갖다놓았다. 서가에는 영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반 고흐,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로댕의 화집, 한국풍속화집, ‘한국의 미’ 전집 등이 꽂혀 있다.
블래터 회장은 3일 일본으로 건너가 23일 돌아올 예정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객실은 철저히 관리된다. 전담 룸 메이드가 욕조 옆의 그릇에 사해(死海)산 베스 솔트를 충분히 채워 넣고 한나절 이상 청소하고 나면 턱시도 차림의 지배인이 들어와 체크한다. 그가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식탁 옆 2m 높이의 킹 벤저민 나무를 살짝 흔들어 곧 떨어질 잎새를 미리 떨궈내는 일이다. 그는 실내를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가구들에 손바닥을 일일이 대면서 체크하는 것이 버릇이다. 금고에는 보이지 않는 틈새에 반지나 목걸이가 없는지, 자개장 위에는 먼지가 끼인 것이 없는지 촉감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반드시 블래터 회장의 음식 취향을 기록한다. 달걀 토스트 우유 주스 커피 등 간단한 음식들의 취향마저도 꼼꼼히 기록한다. 이른바 ‘게스트 히스토리’다. 호텔 측은 79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머문 VIP들의 히스토리를 대외비로 보관하고 있다. 호텔은 알고 있다. 이 대외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과 자긍심이 된다는 것을….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각 호텔 최상의 객실들▼
| 호텔 | 룸 | 평수 | 1일 이용료 (만원) | 디자인 컨셉 | 층 | 조망 | 연중 대실일 (일) | 특징 | 최근 2년간 주요 이용고객 |
| 하얏트 | 프레지덴셜 스위트 | 100 | 786 | 우아 | 20 | 한강 남산 | 80 | 희귀장서 2000권 | 영국 여왕 |
| 롯데 | 로열 스위트 | 140 | 968 | 화려 로코코 | 33 | 북악산 남산 | 15 | 국내 최고가 | 일본 총리, 사우디 왕세자 |
| 인터콘티넨털 | 마운틴스위트 | 54 | 205 | 한국미 | 33 | 테헤란로 | 200 | 마운틴 스위트가 5개 마련됨 | 독일 총리 |
| 힐튼 | 남대문스위트 | 120 | 532 | 영국풍 | 21 | 남산 | 35 | 복층구조 | 배우 스티븐 시걸 |
| 그랜드 힐튼 | 프레지덴셜 스위트 | 100 | 254 | 유럽풍 | 12 | 백련산 | 15 | 서울 최고의 자연환경 | 브루나이 왕자 |
| 프라자 | 로열 스위트 | 100 | 665 | 우아 | 21 | 북악산 | 60 | 서울의 중심에 위치 | 미연방 하원의장 |
| 웨스틴조선 | 프레지덴셜 스위트 | 95 | 660 | 심플, 모던 | 18 | 덕수궁 | 37 | 맥아더장군,왕세자시절 히로히토 등 역사적 인물 투숙 | 싱가포르 전 총리 |
| 리츠 칼튼 | 프레지덴셜 스위트 | 80 | 665 | 모던, 갤러리풍 | 17 | 남산 석양 | 70 | 피카소 등 명화 전시 | 이탈리아 총리 |
| 르네상스 | 프레지덴셜 스위트 | 96 | 484 | 갤러리풍 | 22 | 테헤란로 | 120 | 국내외 명화 전시 | 핀란드 대통령 |
| 제주 신라 | 프레지덴셜 스위트 | 84 | 581 | 남프랑스풍 | 7 | 한라산 태평양 | 88 | 국내 최고 수준의 자연 환경 | 말레이시아 총리 |